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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발표 시

5분 간 정차합니다 - 이신율리

by 이신율리 2023. 2. 3.

 

5분 간 정차합니다  

 

 

화분 속에서 민들레가 쑥쑥 올라와요

발등은 부어있고 솜사탕 목걸일 걸었어요

드레스와 립스틱이 문제네요

 

햇빛 쪽으로만 가는 청량리 행 전철이

동해바다로 가는 무궁화 열차를 보내기 위해

5분 정차합니다

그 시간은 동해바다를 위한 묵념 같기도 한데요

 

5분 침묵 속에 소란이 끼어들 수 있어요

귓구멍에서 이어폰이 자꾸 빠져 흘러간 노래가 흘러가지 못

한다면

기우뚱 웃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춘 동작의 생각까지 멈춰야 해요

 

5분을 사전처럼 펼쳐 놓고

스물일곱 번째 행 무궁화 꽃술 사이에 나를 끼워 넣어요

 

낱말 사이에서 점점 색이 짙어져

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모르는 단어처럼

먼저 화를 내는 쪽이 유리한가요

나무 밑둥을 탕탕 쳐봐요 그럼 포도가 열릴 수 있으니까

 

무릎 사이에 낀 가방처럼 얼굴을 바꿔봐요 낯설지 않게

동해바다를 생각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철썩거리는 스텝 말고 표준코스로 가요

젖지 않는 여름까지

스크린도어가 닫히고 말풍선이 살아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멈췄다 사라지는 것들에게 눈을 맞추고 지금, 우리 열차 출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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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포스』 2022년 겨울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