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1 윤숙노* - 이신율리《사이펀》2021년 여름호 윤숙노* - 이신율리 소매 길이를 잰다 풀어진 머리칼을 제치면서 잰다 짜증 낼 수 없다 귀신은 아무 때나 팔을 내주지 않으니까 버선을 넣어 만든 액자가 기울어 새벽종이 울린다 애썼다고 입에 땅콩 알사탕을 넣어준다 나이를 먹지 않아서 귀신은 존댓말이 필요하다 할머니는 귀신이 잘 보여 존댓말을 모른다 귀신은 옷고름 길이가 봄날보다 짧다고 투정했다 할머니는 섭섭해서 남산에서 목련처럼 울었다 붉은 치마가 더 붉은 날이었다 귀신은 금박을 무서워한다 금박 속에 귀신이 산다고 믿는다 할머니는 좋아한다 샛노란 끝동에 복복福자를 찍었다 귀신처럼 감쪽같다 할머니가 귀신처럼 웃는다 소매에서 팔을 뺄 때마다 팔이 자꾸 생겨났다 쉬지 않고 팔을 만든다 이제 색깔 옷은 지겹다고 할머니는 종로 3가 골목이 꽉 차도록 검은색 당초무.. 2021. 8.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