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두 발목들/왕릉11

의안대군 묘 의안대군 묘, 완천군 묘, 학천군 묘, 익천군 묘 -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로 의안대군 조선 태조의 동생 태조의 막내아들인 의안대군과 한자만 다르지 발음은 같아서 혼돈이 올 수 있다. 태조의 동생은 이름이 이화, 태조의 막내 아들은 이방석 이방석은 제1차 왕자의 난 16세에 처형되었고 이화는 이방원을 도와 서자에서 의안대군으로 봉해졌고 영의정의 자리까지 올라 60세에 죽었으니 며칠 전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못 가고 오늘 다시 갔다 이곳엔 의안대군의 아들 완천군, 학천군, 익천군의 묘 4기가 있다 석물들의 표정이 예전 왕릉에서 본 것과는 다른 것들이 있다 입을 벌리고 있는 사자의 모습이나, 무인석이 둘 인 점, (아마도 의안대군이 무인이었기에 그렇지 않나 싶다) 묘에 띠를 두른 점들 말석상은 총을 맞았는지.. 2023. 2. 22.
신빈 신씨 신빈신씨묘역(信嬪辛氏墓域)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조선시대 태종의 후궁인 신빈 신씨 묘 2001년 9월 17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가을이 다 가버리기 전에 앞산 등산 올라가서 내려다 본 도곡리 이정표만 봐왔던 신빈 신씨 묘역에 가보자고 장명등 하대석에 새긴 신령궁주 한 글자씩 사면에 새겨져 있다. 태종의 후궁인 신빈 신씨의 묘역이다. 신빈 신씨는 태종 14년(1414)에 신령궁주에 봉해졌고 원경왕후가 죽은 후에는 궁궐의 내명부를 총괄하다가 태종이 죽자 승려가 되었다. 신빈 신씨의 무덤은 길고 납작한 화강암으로 봉분 둘레를 둘렀고 주위에는 묘표, 상석, 장명등 각 1기, 문인석 각 1쌍이 있다. 세종 23년(1441)에 세운 것으로 생각되는 묘표는 머릿돌이 화관모양으로 되어 .. 2020. 11. 14.
태종 왕자 - 함녕군 함녕군(諴寧君)(?∼1467(세조 13)) 이름은 이인(李䄄) 자는 정경(整卿) 태종의 둘째 서자(庶子)로 어머니는 신빈 신씨(信嬪辛氏)이고, 부인은 좌의정 최사강(崔士康)의 딸이다. 1413년(태종 13) 정윤(正尹), 1414년에 원윤(元尹), 1417년공녕군(恭寧君)에 봉하여졌다. 1429년(세종 11) 왕명으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금과 은으로 보내던 종래의 세공(歲貢)을 소·말·포(布)로 대신하기로 명나라 성조(成祖)의 허락을 받고 돌아왔다. 1433년 그의 군호(君號)가 홍녕군(弘寧君)과 서로 비슷하다 하여 함녕군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신빈 신씨의 아들 20년 11월 14일 2020. 11. 14.
박원종 묘역 용은 닮은 것이 9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뿔은 사슴, 머리는 낙타, 눈은 토끼, 몸은 뱀, 배는 이무기,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손바닥은 호랑이, 귀는 소와 각각 닮았다고 한다. 용의 발톱은 몇 개일까? 경복궁 천정에 7개의 발톱을 가진 용이 그려져 있고 덕수궁 중화전 용의 발톱은 5개 숭례문에는 용의 발톱이 4개? 왜 이렇게 용의 발톱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 놓았냐 하면요 신도비 자세히 보면 용의 발톱이 4개 더라구요 그 시대의 권력이 대단했다 아입니꺼 그간 비가 많이 내려 만고강산 풀이 태평성대로세 상석 뒤에 서 있는 비석, 구름이 둘러 쌓인 가운데 이 새는 무슨 의미일까요? 비석에 새가 있는 것은 처음 봐서 궁금하네요 나갔다 오는 길에 저기 저 산 아래 골목길 가보자 싶어 차를 몰고 가다가 커다란.. 2020. 9. 14.
안빈묘(安貧墓) 안빈묘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복사꽃은 이제 피기 시작하고 저 산등성이! 찬란한 연둣빛 안빈묘 사적 제366호 조선 17대왕 효종의 숙빈 안빈 이씨(1622~1693)의 묘 문인석, 장명등, 동자석, 묘표석이 있다 효종과 숙원사이에 숙녕옹주가 있다 묘 표지석의 글은 숙녕옹주의 남편 금평위 박필성이 썼다 한다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감시 카메라 서있는 자리 좀 보소 무슨 생각으로 저 자리에 세웠을고 혼(魂)이 나가 놀다가 불빛을 보고 잘 찾아오라고 세운 장명등 망주석은 곡장(무덤을 에워싼 담)안쪽은 음택이니 음양의 조화를 위해 양근 (陽根)을 세운 것이란 말이 있다 동자석이 있는 묘는 처음이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울타리에서 멀다 정면엔 진달래 키가 커서 보이질 않는다. 관람객을 위해 묘를 조.. 2020. 4. 9.
광해군묘, 성묘 광해군 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337-4번지 광해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숨기에 바빴던 선조와는 달리 왕세자의 몸으로 전쟁터에서 백성과 함께 했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광해군의 인기는 높아졌고 그 같은 군주라면 분명 훌륭한 통치자일 수 있겠다고 입을 모았겠지 조선 왕들의 훌륭하단 기준은 다르지만 멋진 왕의 모습임은 분명 하단 생각이 든다 어느 누가 그를 복원시켜 줄까 광해군의 묘는 가까이 갈 수 없다. 먼발치서 보이는 광해군과 부인의 나란한 무덤 누구의 말로는 누명 속에 애석하게 폐위된 광해군이라고 한다 그 시대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뿌리가 뽑힌 왕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궂은 비바람은 성 머리를 모질게 휩쓸고 음산한 기운속에 높은 다락 솟았구나 바다의 성난 파도 저녁녘을 재촉하.. 2020.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