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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모란과 작약41

<밤쩌: 사라져가는 것에 대하여 part. 2> 를 선보이며, 불세출은 '전통의 본질'을 고민하고 존중합니다. 전통이 주는 깊이와 무게감에 집중합니다. 다행히 전통음악에 대한 환대와 수용이 예전보다는 가깝게 느껴지고,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작 작품들이 다채로움을 넘어서 경이로움으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것을 좇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던 것이 잊혀져 가는 이면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세출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하여' 시리즈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전통이 과거를 살아온 사람들의 노래와 음악들이 창작되고 변형되어 만들어진 창작물인 것처럼. 지금을 살고 있는 불세출의 시선으로 만들어낸 과거의 노래가 오늘날의 전통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미래에도 전승될 전통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시대의 음악으로 만들어내.. 2024. 1. 26.
오래된 것들 오래된 것들은 언제 다시 태어날까 태어나서 다시 새해도 맞고 옥색 부리를 단 백학처럼 내게 날아오거나 그 앞에서 나도 백학이 되거나 오래 전 옥을 팔고 호박을 팔고 진주, 다이아도 팔던 곳에서 나뭇잎 80여장의 반짝거림으로 내게 온 한 장 한 장 꿈결 같았지 달랑거리면서 꿈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은 블벗 친구님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실거라고 2022년 12월 31일 2022. 12. 27.
메주와 눈사람 메주를 닷말이나 쑤었다고 엄마가 전화를 했다 맛있겠네 어릴 적 메주를 만든다고 콩을 삶을 땐 한 주먹씩 먹던 생각이 나서(원래 콩을 좋아해서, 염소띠도 아닌데, 염소가 콩을 좋아했던가?) 얘기하다 갑자기 엄마가 "메주 만든 거 보면 딸, 시 한 편 쓸 수 있을 것 같아 사진 보낼게" 어쩌다 엄마까지 매사에 시 생각을 하게 했구나 내가 '참 열심히 써야겠다 "엄마, 메주랑 다른 메주네 메주가 왜케 이뻐" 며칠 후 다시 보내온 사진 참 이쁘게도 매달으셨네 우리 엄마 게발선인장 꽃도 잘 피웠고 엄마는 뭐든 예쁘게 만들었지, 송편도, 하다못해 부엌을 쓸던 빗자루도 그런 엄마가 이젠 늙어가네 한참을 늙어가네 밖으로 나왔다 한 주먹 내린 눈으로 누군가 눈사람을 세 개나 만들어 놓았다 개구진 마음으로 만들었겠다 "운.. 2022. 12. 6.
그 여름은 어디 갔을까 그 여름은 어디 갔을까 그 여름 능소화는 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바람도 불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동네 끝자락에 사는 할머니 댁으로 심부름을 갔다 “부추 좀 사 와” 나는 소쿠리를 들고 두 걸음씩 뜀뛰듯 날아가듯 능소화 보러 갈 때만 걸었던 걸음이었지 그러니까 능소화 걸음인 거지 기역자로 굽은 할머니의 허리를 보면 그 집 아저씨가 떠올랐어 키 크고 잘생겨 꼭 탤런트 같았던 아저씨와 키 작은 아줌마 아저씨는 퍽 하면 바람이 났고 아줌마는 퍽 하면 울고 다녔던 기억 그래서 할머니 등이 저렇게 굽었나 하는 생각을 하느라 얼마치 주세요 하는 얘기도 잊어버리고 능소화는 부추 밭가에 가죽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세상에 없는 꽃 같았어 어떻게 저런 빛깔로 대롱대롱 매달려 피느냐고 우리 집 마당가엔 가죽나무가 두 그.. 2022. 7. 30.
아스파라거스 여고 시절엔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넜지 갈대가 뒤섞인 바람소리를 듣거나 떠내려가듯 건너는 뱃머리에서 보는 건너편 풍경은 닿아도 닿을 수 없는 세계 같았지 키 큰 미루나무를 지나고 모래밭을 흔드는 아스파라거스를 만나고 털실 같았어 이런 빛깔 스웨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열여덟이 좋아했던 초록 뭉치 가을이면 새빨간 씨앗을 선물로 달았으니 내가 초록과 빨강을 뒤섞는 이유야 꽃을 많이 키우면서도 동네 마트에 가면 꽃을 기웃거린다 어, 이거 아스파라거스? 맞다 추위엔 강하지만 건조해야 하고 햇빛이 좋아야하고 동향이라서 겨울엔 빛이 많이 부족한데... 그래도 안고 나왔다. 지금 그 시절을 불러내야 할 것 같아서 남편은 그걸 뭐하러 샀냐고는 하지 않았다. 나를 닮아 머리숱이 많다고는 했다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 2022. 1. 20.
조팥밥 좋아하는 음식 중에서 밥요 어느 사람은 흰 쌀밥을 좋아하거나 현미밥 또는 흑미, 보리밥, 찰밥 좋아하는 밥들이 있죠 저는 가끔 차조에 팥을 넣고 밥을 해요 그것이 가만 생각해보니 제가 저에게 힘내라고 주는 먹거리 같아요 어릴적 동네 가난한 집이 있었는데 점심을 노란 메조로만 해서 밥을 먹는거예요 그땐 그 밥이 왜그렇게 맛있어 보이던지요 봉지에 보니 입맛 나게 하는 잡곡이라네요 차조가 팥은 잡곡중에서 가장 좋아해요 어느 사람은 생목이 오른다고 하는데 저는 팥만 삶아서 수저로 퍼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반찬은 김만 있어도 되구요 아마 이럴 땐 내 어디가 조금은 부실한 것이 아닌지 싶어요 오늘 점심에도 밥을 해놓고 저녁까지 마치 무슨 간식처럼 먹고 있습니다 남편은 별로 안 좋아하는지 저만 먹으라 하는지 잘 안.. 2021.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