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외과, 일년에 한번 검진 받는날, 집에서 10분 거리
흐리다. 션하라고 펄렁거리는 배기바지를 입고 나왔더니 추울려고 한다.
사거리에선 분수 청소를 하느라 대여섯 명의 아저씨가 물대포를 쏘고 난리다.
가로수 이팝나무가 눈부시다
이팝꽃이 풍성하면 풍년든다는데
병원 속엔 서울 사람이 다 모였다.
키를 재는 사람들, 혈압재고 몸무게 재고 기계는 쉴 틈이 없다. 몸살나겠다.
한 할머니가 소화기 내과 앞에서 대기중이다. 손엔 노랑 손수건으로 돌돌 만 보라 붓꽃 한송이가 쥐어있다.
딸을 데리고 온 아버지 얼굴이 애가 타서 새까맣다. 젊은 딸 갑상선 조직검사 하러 왔다.
엄마 병원 모시고 온 딸이 수납하게 엄마 카드 내놓으라고 몇 번을 얘기한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나뭇잎만 푸르다.
"이상 없습니다. 내년 이맘때 다시 검사하세요."
나오려는데 간호사가 2012년에 수납하고 촬영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환불해가란다.
아마 종합검진하면서 촬영을 했기에 정기 검진에선 뺐나보다. 수납은 미리 했었고
수납처에 가니 51,000원을 내준다.
오호! 간밤 꿈에 어떤 꿈을?.
나오는 길 이팝나무 꽃이 훨씬 더 눈부시다.
느티나무 그늘로 걸어간다.
할머니들이 난전을 펼친 길이다.
후덕하게 생긴 할머니 앞에 사람이 늘어섰다.
오이지 담을 철인가? 한 박스가 금방 동이난다.
상추 이천원어치를 샀다. 덤으로 얹어주는 이름 모를 쌈채소가 상추보다 더 많다.
검정 봉다리를 받는 손이 미안하다.
김가네 김밥 집에 들어가 멸추 김밥을 시켰다.
얼큰한 김밥을 오물거리면서 슬금슬금 풍경을 본다.
청년 1
몇 일 전 와서 김밥 먹을 때 곁에 앉아 된장찌게를 시켜먹던 가난한 청년
오늘은 마주 앉아서 열심히 수저질이다.
역시나 오늘도 공기밥 추가다.
무슨 일을 하기에 마지막 밥 한알, 국물 한모금까지 알뜰히 마셔댈까
청년 2
라볶기를 시킨 청년
미리 나온 단무지를 단번에 먹어 치운다.
빈 그릇을 갖고 오더니 떡볶이만 죄다 골라 담는다
떡볶인 안먹나? 왠 일
폭풍흡입으로 떡볶이를 먹어 치우더니 라면은 청룡열차 돌 듯이 후루룩
청년+ 중년
눈아래 지방이 볼록하다. 볼때기도 볼록 배도 볼록 여기저기 볼록볼록 속으로 웃었다.
근데 아톰처럼 무스발라 세운 머리가 구엽다. 부조화속의 조화다. 이뿌게 비빈 알밥을 톡톡 터트리고 있다.
집으로 오는 공원 길
살 올리는 매실 아래로 .
망초꽃이 지천으로 피고 있다.
할머니 두 분이 정자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슬그머니 앉았다.
관객이 있으니 두 할머니 신이 났다.
노인복지관에서 가요를 배우는데 연습 중이란다.
"김성환"의 묻지 마세요 를 부른다
묻지 마세요 물어보지 마세요 내 나이 묻지마세요
흘러간 내청춘 잘한것도 없는데
요놈의 숫자가 따라오네요
여기까지 왔는데 앞만 보고 왔는데
지나간 세월에 서러운 눈물
서산 넘어가는 청춘 너 가는 줄 몰랐구나
세월아 가지를 말어라
할머니 가슴에 꼭 맞는 가사인지 연거푸 두번을 부르더니
갑자기 민요로 나간다. 니나노~~~~♬
어찌 가사를 저리 다 외셨을까? 장단은 삐걱거리지만
둘 다 틀리면서 장단이 서로가 맞다고 우긴다
내가 약식으로 심판을 해줬다.
한참을 부르더니
"아줌마 민요 좀 아시나봐"
나는 모른다고 손사레를 쳤다.
키작은 아카시아 꽃길로 내려온다.
하얀 웃음이 절로 나온다.
2015년 5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