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비야, 나야/살구

맞짱 뜨기

by 이신율리 2020. 3. 7.

 

 

 

 

 

 


맞짱 뜨기

- 그대는 순한가

 

 

    

 

 

 

 

 

내가 순해 보여서 그랬을까?

 

읍내로 고등학교를 간 나는 삐쩍 말라 촌스러웠고, 짝꿍은 뽀얗고 예뻤다.

짝꿍은 불량 친구들과 껄렁거리면서 오만방자함은 하늘을 찔렀다.

어느 날 주먹을 들이대면서 청소 끝나고 분수대 뒤편에서 보자는 것이다.

학기 초부터 기선을 제압하여 꼬봉 하나 만들어 두겠다는 심산이다.

 

서툴게 봄이 오고 있었다.

 

붉은 벽돌이 음산하게 쌓여있는 운동장 구석이었다. 짝다리로 서서 껌을 씹는 친구가 여럿 와 있었다.

왜 불렀냐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왼쪽 볼따구에서 불이 튀었다. 순간,

젖 먹던 힘이 솟구쳤고 그쪽 볼따구에선 천둥소리가 터졌다.

    

깨끗한 한판승!

손 탁탁 털고, 목 두어 바퀴 돌리고, 

 

 

 

나는 순하지 않았다.

순하게 본 친구의 오판이었다.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순할 순자 붙은 이름이 많았을까

순자, 순승이, 순례, 해순이 …….

나는 어느새 친구들이 이름처럼 순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아카시아 꽃송이처럼 끌려나오는 시간들

 

 

바른 소리를 잘하는 걸 보면 나는 순하지 못한 것 같고, 약한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큰 걸 보면 순한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 같으면 불꽃이 팍, 튈 일에도 이젠 꽤 너그럽다.

나 같지 않은 내가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순하다는 것은 순할 순順 자 앞에 서 있는 내 천자 처럼

물 흐르듯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티벳 사람들 표정은 모두가 풀꽃 같았다. 그들의 행복지수는 어디서 올까

소유의 넉넉함도 아니고 환경의 좋고 나쁨도 아닐 것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행복지수를 높여 본다면 어떨까?

 

날아오르는 산비둘기에게 묻는다. 너는 순하니?

쉬지 않고 땅바닥을 기어가는 개미에게 너도 순하지?


또 다른 예술을 시작하면서 사물 하나하나에 꽃핀을 꽂아주고 있다.

느려도 괜찮고 순해도 좋은 길 하나 내고 있다.

 

 

 

  2020년 3월 7일

 

    

 

'나비야, 나야 > 살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천지간  (0) 2020.03.30
나는 기다립니다  (0) 2020.03.29
쿠키 쿠키  (0) 2020.02.10
설 명절 잘 지내셔요  (0) 2020.01.17
엄마의 꽃밭  (0) 202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