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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모란과 작약

봄동 아줌마

by 이신율리 2021. 3. 11.

 

이사 온 지 20일

슬슬 혼자서 밖으로 나왔다

산수유가 피는 줄도 모르고 이삿짐 정리를 했구나

 

 

 

 

 

냉이 캐셔요?

냉이 캐유

길가에서 냉이 캐는 아줌마를 만났다

나이는 70대 중반에 고향은 청양이고 전주 이씨란다

 

냉이 열 개만 캐서 된장국에 넣어봐 향이 좋아

망초도 캐고 씀바귀도 캐서 내게 준다

나뭇가지를 주면서 몇 개 더 캐란다 따라서 한다

 

 

 

 

 

이사 온 지 얼마 안돼서 동네 지리를 몰라요

그려? 그럼 내가 구경 시켜줄게 나는 여기서 15년 살았어 저기 유진 아파트에 살아

전철역 근처 시장 가잔다.

지갑을 안 갖고 왔다고 했더니 그냥 따라오라고

가면서 이 집은 과일이 싸고, 이불 집 봄 이불 참 이뿌다 그러면서

어느새 평내호평역이다

 

이마트에 장보러 한 번 왔었다고 했더니 이런데서 장보는 건 불편해서 난전에서 주로 장을 본다고 야채 파는 곳으로 간다.

싸다.

봄동 두 봉지를 사더니 한 봉지를 내게 준다 3천원이다

아니라고 뒤돌아섰더니 “싸잖여 이거 하나 못 사주겄어” 받았다

알배추를 사려고 하시길래 “시골에서 남편이 배추 가져온댔어요 그럼 드릴께요”

봄동 보따리를 들고 오는데 아파트 속으로 가잔다

 

“여기에 국민은행 ATM기가 있고 이마트 에브리데이 물건이 괜찮고, 봄이면 여기 길가에서 파는 화분을 산다느니, 나무판에 써놓은 시를 보면서 이것 좀 읽어보라고 나는 예예 하면서 읽고, 여기 아파트는 몇 년 되었고 평수는 몇 평이고, 나는 마젤란 아파트(예전엔 유진아파트 였다고)에 사는데 마젤란 뜻은 외국의 산 이름이라 해서 의아했지만 그러려니 했고 옷을 만들어 입는 나를 모르니 옷집을 가리키며 이집 옷이 고급스럽다고 나중 한 번 와보라고, 저 산은 백봉산 돌이 많아 자빠지면 무릎 다친다고 건너는 천마산, 매일 다녔는데 언제 한번 천마산에 가자고 헉!! 무릎 괜찮으세요? 좋진 않지만 거긴 갈 수 있단다. 저보다 더 튼튼하시네요 했더니 약하게 생겼어 잘 먹어야지 깨깽~”

 

운동하라고 학교 운동장도 알려주신다 왔으니 한바퀴 돌자고

다리는 아프고 봄동은 무겁고,

집 전화번호를 받아 적고 배추를 드려야 하니

 

 

 

 

 

오늘 아침 봄동 겉절이를 하면서 봄동 아줌마가 생각났다.

참 많이도 외로우신가 보다. 처음 본 내게 그렇게 많은 말을 하신 걸 보니

겨울 지나 파릇해지는 봄동을 닮은 아줌마

앞으론 덜 외로우셔서 봄동처럼

삶이 비타민 같으셨으면 ...

 

 

2021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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