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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2

칸나와 폐차장 - 이신율리『한국문학』2022년 하반기호 칸나와 폐차장 - 이신율리 흩어졌다 모이는 이름에 리본을 단다 가벼워지고 싶은 것끼리 등을 보일 때 그때, 여름보다 느리게 칸나가 핀다 새를 먹은 돌이 유리벽을 뚫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 시들기 시작하는 것들은 기억을 털어 날개를 말리더라 아는 곳에서만 멍 자국을 씻는 저녁 젖은 깃털처럼 무거워지는 쪽으로 칸나가 난다 구름 정도는 휘어잡을 수 있는 곳에서 기다리는 새가 핀다 이름표가 떨어져 낯선 자리마다 셔터를 내린다 안을 수 있는 것들은 가렵다가 간지러워서 선인장에 음표를 달아주거나 비밀번호를 빌려준다 컵라면이 먹고 싶은 코끼리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던 쪽으로 여름이 온다 아무리 걸어도 부르트지 않는 미등이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아 가벼워지는 등을 비춘다 폐차장 가는 길에 붉은 칸나가 핀다 흩어졌다 모이는.. 2022. 7. 28.
그림 편지 - 이신율리 『한국문학』 2022년 하반기호 그림 편지 아이는 열두 컷 편지를 가졌다 그것은 열두 잎을 가진 나무의 이야기 아무도 오지 않는 저녁 잎사귀 끝에서 울면 북쪽이 될까 쌀을 씻으면 늙은 개처럼 차분해질까 편지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붉은 꿩이 날아간 방향이라면 이파리들은 구름 한 채 짓고 아이는 기린이 되고 지붕에 걸린 연을 보느라 편지지 밖으로 발이 빠지고 살구나무가 좋아 저녁으로 사람들이 고인다고 아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 내가 화분마다 물을 준다 고장 난 시계태엽을 돌리고 저녁도 없이 밤을 부른다 어둠이 발등에 차린 밥상, 물컹한 가지 조림을 먹고 찬물을 마시고 찬물은 나를 빤히 올려다 보고 식탁 끝이, 언제부터 절벽이었나 생각할 때 멀리서 달려오는 편지가 내게 팔베개를 한다 그림을 그리면 손바닥 만하게 커지는 그 저녁이 우.. 2022.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