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편지
아이는 열두 컷 편지를 가졌다 그것은 열두 잎을 가진 나무의 이야기
아무도 오지 않는 저녁 잎사귀 끝에서 울면 북쪽이 될까 쌀을 씻으면 늙은 개처럼 차분해질까
편지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붉은 꿩이 날아간 방향이라면
이파리들은 구름 한 채 짓고 아이는 기린이 되고 지붕에 걸린 연을 보느라 편지지 밖으로 발이 빠지고
살구나무가 좋아 저녁으로 사람들이 고인다고 아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 내가 화분마다 물을 준다 고장 난 시계태엽을 돌리고 저녁도 없이 밤을 부른다
어둠이 발등에 차린 밥상, 물컹한 가지 조림을 먹고 찬물을 마시고 찬물은 나를 빤히 올려다 보고
식탁 끝이, 언제부터 절벽이었나 생각할 때 멀리서 달려오는 편지가 내게 팔베개를 한다
그림을 그리면 손바닥 만하게 커지는
그 저녁이 우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무라 불러야 하나
열두 컷 그림 속에서 잎사귀 만 한 아이가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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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2022년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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