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비야, 나야/발표 시

칸나와 폐차장 - 이신율리『한국문학』2022년 하반기호

by 이신율리 2022. 7. 28.

칸나와 폐차장      

 - 이신율리

 

 

 

흩어졌다 모이는 이름에 리본을 단다

 

가벼워지고 싶은 것끼리 등을 보일 때 그때,

여름보다 느리게 칸나가 핀다

 

새를 먹은 돌이 유리벽을 뚫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

시들기 시작하는 것들은 기억을 털어 날개를 말리더라

 

아는 곳에서만 멍 자국을 씻는 저녁

젖은 깃털처럼 무거워지는 쪽으로 칸나가 난다

 

구름 정도는 휘어잡을 수 있는 곳에서 기다리는 새가 핀다

 

이름표가 떨어져 낯선 자리마다 셔터를 내린다

안을 수 있는 것들은 가렵다가 간지러워서

선인장에 음표를 달아주거나 비밀번호를 빌려준다

컵라면이 먹고 싶은 코끼리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던 쪽으로 여름이 온다

 

아무리 걸어도 부르트지 않는 미등이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아 가벼워지는 등을 비춘다

 

폐차장 가는 길에 붉은 칸나가 핀다

흩어졌다 모이는 이름에 리본을 단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한국문학』 2022년 하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