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하셨다
속이 불편하시다고
3년을 시골 보건소에서 약을 타다 드셨단다
그 얘기를 전화를 통해 듣는 순간
내가 자식이 맞나 싶었다.
아버지 나이 스믈 아홉에 결혼을 하셔서 늦게 얻은 딸
딸이라 서운타고 문을 쾅~하고 닫고 나가셨다고 딱 한번 엄마가 얘기했었다
그런 딸이 욕심많고 부지런해서
아들 셋보다 늘 딸이 최곤 줄 아신 아버지다
딸 시집 보내던 날 밤을 꼬박 세웠단 아버지
내가 중학교 들어 갈 때
강경 장날에 발이 작은 나를 데리고 진종일 운동화를 사러 돌아 다니던 기억
장에 가시면 늘 색동 고무신에 구두를 사들고 오신 아버지
그래서 장남인 동생이 늘 입이 나왔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집을 나왔으니
아버지와 눈 맞추는 시간도 많지 않았고
손 한번 제대로 잡은 살가운 기억도 없는 부녀지간이다
수술 하기 전 연세가 여든 하나시라
수술을 반대하는 말도 많았었다
수술을 이기기도 힘이들고 항암치료도 어렵다고
아버지 바로 아래 작은 아버지가 23년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셔서
고통을 본 아버지와 엄마는 수술 하기를 속으론 원하셨으면서
자식들 의견에 맡기셨다
시골에서 텃밭을 일구며 일을 하셨던 터라 건강하셔서
수술후 격한 고통이 있었으나 잘 이겨내셨다
알레르기가 있어 하루에도 여러번 제체기를 심하게 하셨었는데
감사하게도 기침한번 없이 빨리 회복하셨다
병실에선 '세상에 이런일이..'란 프로에 나가야 된다고 말씀하셔서 모두가 얼마나 웃었던지...
엄마가 계셨지만 하루도 빼지 않고 가서
팔 다리 주물러 드리고 아버지와 운동하고
어찌 가장 힘드실 때 나 혼자 아버지와 함께였다
병원 긴 복도 끝에 남편이 '아버지 저쪽이 집이에요' 했더니
나랑 운동하면 꼭 그곳으로 가서는
'저기가 사는곳이여' 하시던 아버지
매일 보면서도 좀 늦으면 찾으셨단 아버지
난 늘 엄마를 닮은 줄 알았었다
그런데 처음보는 사람들 모두가
아버질 많이 닮었단다
그 소릴 듣고 웃으시던 아버지
퇴원하는 날 엄마가 그런다
'딸 ~ 이번에 아버지 군복 입은 값했다...?"고
'뭔 군복?'
할머니께서 시집살이를 얼마나 시키셨는지
나를 낳았는데 포대기 하나 만들어 주시지 않으셨단다
그래서 태어나자 마자 아버지 군복에 나를 쌌단다
'난 태어날때부터 군복을 입은 여자다' 하하~
퇴원하시고 집에 일주일 쯤 계시다 가시랬더니
바쁜 딸집에 널부러져 누워있기 싫다고 그냥 내려가셨다
잘도 이겨내신 아버지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셔서
몇 개월 후면 백세가 되시는 할머니처럼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2010년 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