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간 여우 섬이다.
여우섬에서 바라 본
다닥다닥 돋아난 이름없는 섬들이
안개 리본으로 멋내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줌 뚝 따서 나도 리본을 달고 바람개비처럼 팔랑거렸다.
파도소리처럼 바위를 탔다.
좋아하는 산길엔
찔레꽃 향기로 나를 유혹하는 걸
왜 그러시옵니까 하고선
잘도 뿌리치고 나왔지.
하루가 어찌 그렇게 나보다 앞서 달음질을 쳐대던지
밤 11시에 달 찾으러 해변으로 갔다
달은 어디에서 한눈을 팔고 있을까
아니면 누가 꼭 안고서 보내지 않았을까
하늘이 엎어진 듯
어둔 해변에 조개 껍질만 별처럼 콕 박혔더라
낚시터 바위틈에서 방풍을 만나고
왕 다슬기 수군거리는 바위를 타잔처럼 날아다녔다.
잔대 더덕이 향기로운 곳에서
붉은 보리수를 따라 나섰다가 길을 잃었지
길 잃어도 좋았지
정말 좋았지
천남성이 그렇게 듬직하게 핀 모습은 처음이었어
꼭 듬직한 청년들의 행진 같았지
꽃 지면 사약으로 쓴다는 붉은 열매가 맺히는데
그래도 한사발 들이키고 싶을만큼 고운 빛이었어
내게 섬은 꼭 연인처럼
만나면 좋아 죽고
돌아서면 또 죽을 것 처럼 외롭네
외로워야 사람이래니
한 세상
그렇게 살자.
2013년 5월 30일 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