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콜록 사월
/이신율리
배꽃이 질 때까지 나는, 사월이 하는 일을 보고만 있었다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발이 작은 운동화는 팔지 않았다 참외에서 망고 냄새가 났
다 사월이 콜록거렸다
푸른 것은 더 푸른 것끼리 속아 넘어가고 흰 것은 흰 것끼리 모였다 배꽃 같은
나이를 뒤적거렸다 달아나지 않으려고 네 칸짜리 사다리를 오르내렸다 하루가 갔다
하늘은 내일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배꽃의 잔소리가 4차선 도로까지 따라왔다 노래하나 물고 새가 날아갔다 잃어버
린 가사가 둥둥 떠다녔다
손을 흔들어도 버스는 지나갔다 초록 티셔츠를 입은 울창한 숲이 아무도 모르게
헛발질을 했다 떫고 신것들이 툭툭 나이만큼 떨어졌다 열다섯 살에 잠갔던 배꽃이
먼 쪽에서부터 피기 시작했다
구름 뒤에서 나는 미끄러지지 않는 숲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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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겹다.
세상을 시로써 바라보게 한다.
고단한 세상을 시로써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이곳은, 이 세상은, 시가 꼭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힘들고 어렵고 속상하고…… 시가 있어야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론가들이나 시인들은 이 시에 대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구태여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1
이 시를 저녁 내내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사월을 콜록거리며 지낸 이야기?
이신율리의 카페 창문이나 이신율리의 선글라스로 본 세상은 재미있고, 아름답기도 하고, 추억처럼 아련하기도 하고, 아픔과 슬픔도 노래처럼 보인다.
나는 그 꿈결을 타고(시인도 꿈속에서는 나처럼 현실을 온통 굴절시켜가며 지내겠지?) 망원경이나 현미경 혹은 요지경 들여다보듯 세상을 본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니!
이 신비로운 일에 대해 미안하고 고맙다.
*덧붙임*
나는 처음에 이 시인의 시 몇 편을 연속으로 보고 놀라웠고, 더 보고 싶었다.
한참을 기다려 이 시를 보게 되었다.
지금부터 또 기다리겠다고 하면 시인이 초조해질까 봐 걱정스럽지만 누가 보면 "걱정도 팔자"라고 하겠지.
시인이 이 글을 볼 리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본다고 해서 초조해질 리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정말로 이 말을 하는 것이며 이 시인이 몇 달 후 혹은 그보다 더 걸려서 다시 이런 시를 보여주더라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이 말도 주제넘은 것이겠지.
시인 이신율리는 아름답다.
2020년 파란편지 김만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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