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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발표 시

소름이야기 / 이신율리 《포지션》2024년 겨울호

by 이신율리 2025. 2. 3.

 

 
 

 

소름 이야기

 

사람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배를 넘어가던 구렁이가 있었지 그때부터 더위를 느끼지 못했어 기억은

시린 부분만 남겨두고 파먹지 힘줄마다 붉은 독니가 돋아 단숨에 따뜻한 것

을 타고 넘지

소나무 가지에 매달았던 소름을 받아 써봤지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소름

한 방울 받아 적었지 꿈틀거리던 눈빛과 마주쳤을 때 빠르게 그늘 속으로

우거졌지

깜깜한 묘지에서 겨울 별장이 걸어 나와 해를 일곱 개나 잡아먹은 시체꽃

은 창문을 닫고 묘지에 기대 낮잠 자는 나를 큰 소리로 불러내 청춘가를 부르

면 몸이 차가워져 사는 것보다 더 흔들리는 답은 뿌리 깊은 응달에 박혀 있지

사람들은 은근히, 소름 돋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여름은 꽃 피울 시간이 없어 세상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아 일곱 살을 삼킨

이빨 자국만 선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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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202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