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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발표 시

와플 좋아하세요 - 이신율리《시로여는세상》2023년 가을호

by 이신율리 2023. 10. 9.

 

와플 좋아하세요  

오늘 마감, 이라는 글자를 쓰는데

헤어졌던 연인들이 돌아오네요

진주 설탕 덩어리처럼 손님은

쉬지 않고 새롭습니다

새로 만난 연인들의 생크림이 더 달콤할 리가

그럴 리가 있습니다 접었던 귀를 다시 펴는데

컴컴한 길을 가는 사람들의 구두코는 반짝이고

저녁과 초코의 관계는 거꾸로 매달린 장미 같아서

잊지 않고 블루베리의 밤이 찾아옵니다

통 블루베리 와플 주세요

오독오독 씹히는 소리는 감추고

변함없이 쓸모 있는 같은 메뉴 좋습니다

크림과 크림 사이에서 만난 사람들은

오늘 조기 마감, 전에 영화를 보고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면서

와플을 굽고 식히는 과정을 기다리죠

설탕 대신 소금 뺐어요

단맛은 반복하는 재미죠

와플와플 하면서 꺾어지는 풍선 인형의 손짓이나

골목을 구부리는 고양이의 좁은 보폭이나

어두워지다 좀 더 어두워지는 블루베리와 함께

고민하는 저녁이 투명한 이유는 알 수 없어요

가볍게 바삭하게 촉촉하게

겉과 속이 다른 오늘 추가할까요

얼음 없이 아몬드 주스 추천입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단맛은

새로운 메뉴에 속하지 않아서

동전을 줍다 떨어지는 단추 같아요

냉동했던 블루베리가 녹았는데 아직 어두워

다시 만난 연인들은 녹지 않아서

블루베리 와플을 주문합니다

반을 꼭, 접어요

흘러내리는 건 크림 대신

시나몬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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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여는세상』 202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