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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발표 시

비닐우산 운동장 / 이신율리 《포지션》2024년 겨울호

by 이신율리 2025. 2. 12.

비닐우산 운동장

 

 

내가 놀 때 너는 위조지폐 같은 미래를 준비하고

나는 연기 나는 생선 골목을 돌아다녀

 

꿈을 이야기할 때 우린 빗방울처럼 튀어 오르지

 

제목 없이 수정이 가능한 것만 늘어놓고

계란프라이처럼 애매한 소린 빼고

 

비 오는 날도 하늘은 파랗지

 

젬베 소리가 들려

 

초침이 빠른 시계를 차고

마지막 공연처럼 스텝을 밟아봐

미끄러질수록 확신에 찬 비가 내리고 있어

 

운동장의 눈꺼풀은 건너뛰어

목이 꺾이면서 자라는 풀과 함께

사랑니 같은 날씨는 접었다 펴면서

솟아오를 때까지 초식동물처럼 달리자

 

만국기가 펄럭이는 트랙 위에서

빗나간 공처럼 뛰어 오르자

 

테니스코트를 가로질러

부재중 메시지는 지우고

정오의 새는 날려 버려

 

토끼풀꽃에서 먹부전나비까지

마카롱 마카롱 길이 생길 거라고

 

키 높이에서 부는 바람을 따라

연기 나는 생선 골목을 빠져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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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202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