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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발목들/왕릉

광해군묘, 성묘

by 이신율리 2020. 3. 26.

 

 

광해군 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337-4번지

 

 

 

광해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숨기에 바빴던 선조와는 달리 왕세자의 몸으로 전쟁터에서 백성과 함께 했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광해군의 인기는 높아졌고

그 같은 군주라면 분명 훌륭한 통치자일 수 있겠다고 입을 모았겠지

조선 왕들의 훌륭하단 기준은 다르지만 멋진 왕의 모습임은 분명 하단 생각이 든다

어느 누가 그를 복원시켜 줄까

 

 

 

 

 

 

 

 

 

 

광해군의 묘는 가까이 갈 수 없다.

먼발치서 보이는 광해군과 부인의 나란한 무덤

누구의 말로는 누명 속에 애석하게 폐위된 광해군이라고 한다

그 시대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뿌리가 뽑힌 왕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궂은 비바람은 성 머리를 모질게 휩쓸고

음산한 기운속에 높은 다락 솟았구나

바다의 성난 파도 저녁녘을 재촉하고

수심 어린 푸른 산 가을 빛을 띠었구나

고향으로 가고픈 이 마음 봄풀마저 보기 싫은데

머나먼 객지에서 소스라쳐 꿈을 깨네

나라의 존망은 소식조차 끊어지고 

저녁 안개 깔린 강 위에서 외딴 배에 누워 있네
 
 

- 광해군이 쓴 시

 

 

 

 

 

광해군 어머니 - 성묘(成墓)

 

 

성묘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 55번지 

사적 - 제365호

 

조선 제14대 선조의 후궁인 공빈 김씨의 묘이다

공빈은 재색이 뛰어나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

선조 7년(1574)에 임해군을, 선조 8년에 광해군(1575년)을 낳았다.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았다면 왕의 어머니이므로 건 상궁(健祥宮)에 모셔졌을 것이나 지금은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무인석과 석마

 

 

 

 

 

문인석과 석마

 

 

 

 

 

묘를 보호하고 섰는 양

 

 

 

 

 

묘를 지키고 섰는 호랑이의 얼굴이 보인다

 

 

 

 

 

 

 

석물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능이다.

이곳에서 한나절이나 하루를 있으래도 나는 좋아라 할 것이다.

 

 

 

선조 10년(1577)에 세상을 떠난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는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를 공성 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성릉成陵이라 하였다.

이후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다시 공빈으로 강등되고 종묘의 신주를 없앴다.

 

묘소는 성릉으로 추봉 할 때 왕릉의 격에 맞게 석물을 다시 조성한 것으로

문. 무인석, 장명등, 혼유석, 난간석 등이 남아 있다.

 

 

 

 

 

 

 

 

 

후궁에서  왕후로

왕후에서 다시 후궁으로

죽은 자는 죽은 자일까

꽃봉오리가 저렇게 많은데

붉은 생각들은 어디서 출발해

뜨겁게 달려오고 있는 것일까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푸른 지붕이 말해준다.

 

 

 

 

 

 

지난해 봐 두었던 살구나무다

나이는 모른다

곁에 사시는 할머니가 분명 살구나무라 했다

살구나무가 올해는 꽃 필 때,

꼭 나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2020년 3월 26일 살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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