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의 천국 서천
산천이 가을로 가고 있다
은행잎 몇 이파리도 풀빛도 가을과 가장 친한 노랑속으로 숨어든다
경부 고속도로 초입은 언제나 만원이다
서울을 벗어나니 들판이 놀놀하고 슬금 슬금 허수아비 나올 채비 하겠다.
빠른 걸음으로 두시간 정겨운 집 마당에
빨간 꽈리가 아구장거리고 어정쩡한 코스모스가 빛깔대로 웃고 있다
익어가는 감을 따 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뒤로하고
꼭 일년만에 다시 찾은 서쪽의 천국으로 내달린다
어릴적 초등학교를 지나고 더 작아진 중학교를 지나니
백일홍이 붉은 가로수길에 4.19날이면 이봉주처럼
마라톤을 하던 키작은 내가 앞서 달린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신성리 갈대밭'이다
빗발은 날리기 시작하고 작년 오늘도 비가 내렸었지
'갈대야 키 큰 갈대야 지난해 모습과 똑 같이 참 잘났구나 내 사랑아'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사람은 그림자도 없고
아니 갈대가 필려면 더 있어야 하니 걸음을 아끼고 있는게지
신성리 오작교에서 그리움처럼 수채화를 그리고
갈대밭에서 나는 선사시대로 돌아가 뛰어 다녔네
흔들리는 다리에서 한참을 겁없이 서 있었고
가장 가볍게 세상을 훨훨 날아 다녔네
꿈이어라 다시 깨도 꿈이어라
오싹거리는 추위를 돔 매운탕으로 날려 버리자
사내 팔뚝만한 돔 한마리에
한창인 전어의 고소한 요런 맛이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축제 준비중인 홍원항은 언제나 가슴 아리게 그리운 곳이다
빗발은 더욱 거세지고 너뱅이섬이 보이는 애달픈 곳에 올라
듬직한 너뱅이를 가슴 가득 품에 안고
키 큰 소나무에 눈맞추고 그 아래 잔풀에게도 작은 웃음을 건넨다
반갑다 철썩이는 파도에 가슴 뭉클한 눈길도 잊지 않고..
춘장대 모래 사장은 보이질 않네
바다가 눈 앞에까지 철썩인다
거센 비를 맞고 꿈쩍 않는 갈매기 몇 마리가 아는체도 없이 무정하네
그래도 춘장대..
내 가슴속엔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다
오늘은 꼭 씩씩한 스므살 청년을 닮았네
작년 오늘 한숨짓던 해당화는
세찬 비바람에 붉은 눈물 다 떨구고 끝없이 어지러이 슬픈 모습이네
꼭 일년만에 다시 찾은 서쪽의 천국 서천!
가을 초입에 비와 바람과 함께 한 고운 꿈 한자락
2007. 9. 14 杏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