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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발목들/충청도

강경 풍경

by 이신율리 2020. 1. 18.



죽림서원



지정별: 문화재자료 제 75호

위치: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3


서원은 유학에 정통하고 언행이 바른 선비의 제사 지내는 사당과

양반의 자제를 교육하는 곳으로 구성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이 서원은 인조 4년(1626) 창건 당시에는 지명에 따라 '황산서원'이라 하였으나

현종 5년(1665)에 죽림서원으로 사액 받았다.

그후 고종 8년 대원군의 서원 훼철시 철폐되었으나 1946년에 다시 제단을 설치하였고 1965년에 복원하였다






죽림서원 정면









담너머 까치발로 찍은 내부





맨 안쪽에 보이는 사당





지금은 공개되지 않는 서원이다

황산대교를 넘어서면 금강가에 있다

어찌 그동안 여길 지나가면서 뭘 보고 다녔을까?

까치발을 딛고 밖에서 찍은 사진들

언젠가 문 활짝 열리는 날이 있기를 바래보면서

돌계단으로 임리정으로 올라간다







임리정



1626 (인조 4년)에 사계 김장생이 건립한 건물로 후학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원래는 '황산정'이라 하였으나 임리정기비에 의하면

'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하라' 는 구절에서 임리정이라 하였다 한다

즉, 항상 자기의 처신과 행동거지에 신중을 기하라는 증자의 글에서 나온 말이며

이처럼 몸가짐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라는 선인들의 뜻이다.










구 조선식산은행 지점장 관사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일제강점기에 경제 침탈의 양대 축을 이루었던 조선식산은행은

옥녀봉자락에 사택단지를 만들고 지점장의 관사도 지어 살았다고 한다.






강경 성결교회  1918년



강경성결교회는 3.1 운동 당시 영국의 존 토마스 선교사의 구타사건을 통해 변상 받은 돈으로 1923년에 건축되었다

기독교 한옥 교회이며, 1923년 이인범 전도사가 성경을 토대로 설계한 한식 목조양식 건물로

강경을 포함한 금강 연안지역 기독교 선교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강경 읍내 (번화가?)로 들어섰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있었던 다방이다

그땐 저 안이 그렇게도 궁금했는데

나는 지금 왜 저 다방 안이 궁금하지 않아서 그냥 왔을까

다음엔 쌍화차라도 마셔야지







중앙동, 가장 번화가 였던 곳을 간다

어디든 중앙동이면 제일 번화가더라

양 옆으로 일제시대 건물들이 보인다


옥녀봉을 오르내리면서 가장 많이 다녔던 길이다










화신 양복점

신광 양화점

대성 상회

홍인 병원



양복을 빼 입고 구두는 백구두를 신었겠지 아니면 주황색?

대성상회를 드나들면서 배 아프면, 홍인 병원에 가서 주사도 찰싹찰싹 맞으면서






연수당 건재 한약방


일제 점령기인 1923년에 준공된 한옥상가 건물로 2층 건물이다.

이 건물은 강경의 하시장을 중심으로 했던 번성시기에

시장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호황을 누리기도 하였는데

건축당시 남일당 한약방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이후 건축주가 바뀌면서

연수당 건재 한약방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후대 자손이 관리하고 있다.


연수당 건재약방은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이 서울에서 주말마다 내려와 계신다

갔을 때 뵙고 올까 했는데 그 주엔 내려오지 않으셨다 했다.

다음에 연락하고 가야겠다.







강경 성당 - 등록문화재 제 650호



1961년에 건립된 당시에 일반적인 건축 구조를 벗어나

아치형식의 구조 프레임을 사용하여 대형 공간을 만든 기법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건축에 조예가 깊은 보드뱅 신부의 설계와 감독으로 지어졌다

건축적, 종교적으로 가치가 높다








모자를 만드는 편물기계





옥양목 짜는 기계




한일은행 강경지점 -  강경 역사관



일제에 의해 한호농공은행이 조선식산은행으로 개편되면서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한일은행 강경지점으로, 다시 충청은행 강경지점으로 바뀌면서

번성했던 강경지역의 상권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금융시설이었다

앞으로 자주 지나갔는데 처음 들어가 봤다.


해설사분과 이것 저것 말하다 보니 강경여고 출신

따져보니 내가 15년 선배다

그때부터 나는 언니가 되었다

살갑게 설명해주던 후배 목소리가 남풍 같았던 날






구 강경 노동조합  -   등록문화재 제 323호



1920년대 당시 내륙지방으로서의 수산물 유통은

대부분 강경 포구를 통해 전국으로 운송되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규모나 세력은 대단하였다.

본 건물은 1925년에 신축되었다. 건축당시 2층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1층만 남아있다

강경지역 근대시기 상권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여고시절을 보냈던 강경 읍내를 돌아보는 일은 보물찾기 같다

잊혀진 나를 뒤돌아서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


보통, 강경을 여행하기 위해 대충 지나치다보면

보이는 것이 없고 다리만 아프네 젓갈이나 사갖고 빨리 올라가던지 내려가야지 그럴 것이다.


이 외에도 강경 상고 건물과 중앙 초등학교 강당 건물 등

골목과 골목 의외의 볼거리가 있지만 그것은,

보고자 하는 사람의 눈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 보일것이다.


아직도 내게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 많은 까닭은

내 발걸음이 여전히 가벼운 까닭이다

         



2020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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