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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발목들/왕릉

석실 마을

by 이신율리 2020. 2. 8.



묘를 좋아합니다

어떤 분은 아직 젊은 사람이 뭔 무덤을 좋아하느냐고


지금부터 십 년 전에 조선 왕릉에 빠져서 일년을 휘돌아 다닌 이력이 있어요

조선 왕릉은 거의 다 다녀왔는데

그 때 사진은 하나도 없네요

다시 다녀볼까 해요


평소 궁금했던 석실마을로 들어섰어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습니다.






문인석님 독사진 하나 담아드릴까요?

배경은 낮달 어때요?

허참!!!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

 

12 지신상(12地神像)과 함께 망자를 지키기 위해 무덤 앞에 세우는 석상으로

각각 문관(복건을 쓰고 홀()을 가지고 있음) 무관(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나라 문, 무인석은 중국의 영향으로 8세기 부터 나타났다






인공연못이 아니고 천연 연못입니다

마음이 맑아집니다

연밥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물 속 은행나무가 손을 흔들더라구요

한참을 들여다 봤어요


부른다고 따라 들어가면 안됩니다

수심 3 미터

저보다 키가 크잖아요





신연(神淵)이라고 불리는 작은 연못이에요

실용적으로 보면 선산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를 담아 배수 기능을 하지만

후손의 복을 기원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어요

옥호저수형(玉壺貯水形)의 이 명당은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들르는 코스입니다. 


이제 한여름 연꽃은

산속 이곳에 와서 구경하기로 했어요

세월아 네월아 앉아서 심심하면 노래도 하구요

이러구러 한세상~

여름 풍경이 그려지네요





안동 김씨 묘역이에요


좌측 초입엔 김상헌 선생의 증조부 김번 선생의 묘가 있어요

좌우로 찍히지 않은 전체 사진이에요

연못에 중점을 두었더니 양쪽이 빠졌어요








김상헌(金尙憲: 1570~1652)


조선중기 문신이자 대학자

병자호란 때에 주전론(主戰論)을 펼쳤다

호란 뒤인 1639년에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조선군 출병에 반대하여

청나라 선양(瀋陽)에 끌려가 6년 동안 억류되었다 돌아와 좌의정에 올랐다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노(大老)라고 존경 받았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청나라로 끌려갈 때 그가 부른 시조다.





김상헌 선생 묘와 석물들입니다





문인석, 무인석은 일반인들은 세울 수 없었던 석물입니다.

무인석은 맞은 편에 있습니다



비석에 쓰인 글씨들이 단정하고 힘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글씨들이 좋습니다







그림 같은 글씨들이 무슨 말을 하는 듯 합니다

서로 아는 사이입니다






이번엔 돌의 생각 한번 들어 보실래요?











무한과 유한 그 사이에서

가만히 나를 들여다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쯤에 있을까

경계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오늘입니다

  

삶도 죽음만큼

죽음도 삶만큼

아름다워야 할텐데 말입니다.


새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2020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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