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비야, 나야/발표 시

바흐의 음악은 과분해서 - 이신율리《사이펀》2021년 여름호

by 이신율리 2021. 6. 14.

 

바흐의 음악은 과분해서

- 이신율리

 

 

 

 

에코 없이 귀를 여는

바흐의 음악은 과분해서 가을 아버지 괜찮을까

 

첼로 끝에 붙어있는 도돌이표에서 바닐라 향이 난다

 

음이 낮을수록 통증이 궁금하다

 

무반주 첼로 음악처럼 꺾이지 않고 차갑지 않게 

전망 좋은 창에 말없는 천사라도 심어야지

 

사철 시들지 않는 아버지의 귓속말을 모아 무반주 재봉틀을 만들었다

노을이 절취선을 따라 박음질했다

 

창문 밖으로 하나 둘 봉분이 늘어가

내가 사는 이곳도 산딸기 무덤

 

낮은 목소리로 반주 없이 봉분을 열어봐

가보지 않은 산책길이 여름방학처럼 살고 있어

그곳에는 꼭 내가 모르는 내가 사는 것 같아

주술에 걸린 아버지가 자꾸 태어나고

가문비나무 속에서 오래된 첼로가 걸어 나와

 

바흐를 좋아하세요 메시지를 보내면

구름 사이로 아버지는 만월로 차오르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계간《사이펀》2021년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