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택시
- 이신율리
발걸음을 세는 일은 맑거나 흐려지는 날씨
그걸 숫자로 바꾸는 일은 잘라버린 꼬리가 자라는 동안
뒤축이 닳은 미터기를 고친다
행진곡을 따라 떠났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미안해요 난 이제 지도가 없어요
어떤 꼬리들도 그렇다
미터기 속
아이 웃음소리가 살고 새로 난 길이
가라앉거나 떠오르지 않는 살림살이가
좌표도 없이 떠 있다
답은 0이 되거나 밥이 익는다
해나고 바람 불지 않아도 뒤축이 닳는 오늘
반숙 달걀이 첫눈 내리는 표정처럼 명랑할 수 있다면
돼지비계의 마술처럼 사월이 끓거나 씀바귀처럼 알약이 써도 되겠지
더 이상 소화할 것이 없을 때
빈 영수증에 얼굴을 덜어 적는다
빨간 신호에도 멈추지 않는 숫자는 자다가 그린 그림 같아
겹치는 색이 많을수록 정지 버튼을 눌러
공터마다 옮겨 피는 봉숭아가 된다
발길이 뜸한 열두 시 잘린 꼬리가 자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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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열린시학』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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