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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발표 시

젊은 시인의 視線, 詩選 - 《열린 시학》 2022년 여름호

by 이신율리 2022. 7. 13.

고선경 -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신율리 -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채윤희 -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품론 - 일상에 대한 시적 전략 / 황치복 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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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주말, 유행이 지난 소풍, 식탁보의 아름다운 레이스는 누구의 솜씨 - 고선경

내일 인도달력, 화요 파스타, 영광 택시 - 이신율리

고양이로 불리는 일, 나나는 레몬을 좋아해, 아스피린 사용법 - 채윤희

 

 

- 고선경, 채윤희, 이신율리의 새로운 시선   -  황치복

 

1. 일상의 미세한 균열들  -  고선경

2. 일상의 특별한 사건들 - 채윤희

3. 일상에 날아드는 마법 - 이신율리

 

  일상을 이루고 있는 요소 가운데 음식처럼 흔히 호명되는 것이 바로 날씨라든가 요일이 될 것이다.일주일이라는 시간의 단위에 따라서 일상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맑고, 흐리고, 비 오고, 눈 오는 날씨에 따라서 일상의 모습은 각각 다른 형태를 취한다. 아마도 달력과 시계에 의존하는 현대인들에게 요일과 날씨는 일상의 가장 흔하지만 중요한 관심사가 될 것이다. 2019년 오장환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단에 나온 이신율리 시인은 이러한 요일과 날씨에 대한 관심을 통해서 일상의 속성을 해부하고 있다. 그런데 이신율리 시인의 신작들에는 "괴담"이라든가 "마녀", 혹은 "마법"이라든가 "마술"과 같은 모티프들이 등장하여 일상에 균열을 가하고 간극을 형성한다.

  시인의 신작인 「영광 택시에서는 달려온 거리를 숫자로 환산하는 택시의 "미터기"를 통해서 일상의 단조로운 반복의 속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택시의 미터기가 일상을 함의하고 있음은 "발걸음을 세는 일은 맑거나 흐려지는 날씨"라든가 "뒤축이 닳은 미터기" 등의 표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미터기 속/ 아이 웃음소리가 살고 새로 난 길이/ 가라앉거나 떠오르지 않는 살림살이가/ 좌표도 없이 떠 있다/ 답은 0이 되거나 밤이 익는다"라는 구절에서도 달려온 거리를 재는 '미터기'가 자잘하게 반복되고 지속되는 일상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일상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것은 달력이 될 것이다.

 

 

 

해를 쪼아 먹는 오늘을 쫓았어 인도니까

 

나뭇가지 끝에 아이들이 매달려있어

점박이 여우나 붉은 물개가 나무 아래

쏟아져 있기도 해

지네와 개구리가 속삭이는 말을 해독할 독이 필요한데

어떤 숫자를 잘라내야 체크무늬 내일이 올까

 

눈이 커지는 밤은 사흘이면 충분해

가면을 벗고 따라와 등 뒤에 내가 있어

 

비 오는 수요일을 찾아야 문제를 풀 수 있지

태양의 자세 끝에서 졸고 있는 얼룩말

고약 같은 꿈 꾸면서 박카스처럼 웃지

오답이 늘수록 경쾌해져 스트라이프 티셔츠처럼 괴담을 걸치고

 

내년 달력 속 수다스러운 동물원으로 놀러 와

꽃 양산 쓰고 새로 산 블라우스 입고 노랑과 샛노랑과

사바나캣을 만날 때까지만

 

가끔 세상에 없는 안부를 물으며 찌개가 끓어

저울로 잴 수 없는 내일도 동물에 포함할까 봐

 

노트를 펼쳤다

하고 싶은 말은 나비보다 나방이 좋다

백합은 칠 년에 한 번 피는 마녀의 꽃이라고 불러야지

 

내일은 우리의 노트를 심을 거야, 물 좀 줘

 

 

                                                                                  - 「내일, 인도달력 전문

 

 

 

 

  인도 달력은 세로로 구성되어 있고, 매일 달의 기울기가 표시되어 있으며, 주로 신화적 인물의 탄생일이나 기념일이 공휴일로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도 달력은 매일매일 달이 차고 기우는 변화가 주된 표시 항목으로 설정되고 있는 셈인데, 이 시에서는 "내년 달력 속 수다스러운 동물원으로 놀러와"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무수한 동물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 시의 주된 제재인 인도 달력에는 "점박이 여우나 붉은 물개"등이 그려져 있고, "지네와 개구리", 그리고 얼룩말이라든가 와일드한 야생 동물 같은 고양이인 사바나캣 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인도 달력에 등장하는 이러한 동물들은 모두 특이한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평범한 동물과는 거리가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점박이 여우는 돌연변이가 아니라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동물이고, 붉은 물개 또한 알비노 물개로서 돌연변이에 의한 변종 이외에는 발견할 수 없다. 사바나캣은 고양이이지만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 야생 동물에 가장 가까운 대형 묘로서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시적 공간에 등장하는 얼룩말은 평범한 듯 하지만 "스트라이프 티셔츠처럼 괴담怪談을 품고 있는 줄무늬 모양의 동물로 해석할 수 있다. 동물은 아니지만, 이 시에 등장하는 유일한 식물인 백합은 "칠 년에 한 번 피는 마녀의 꽃이라고 불러야지"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마법을 부리는 '마녀'와 연관되고 있다.

  그러니까  '인도 달력'에 등장하는 이러한 대상들은 모두 평범하거나 일반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지도 않으며, 괴상하고 이상하며, 비범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시적 주체가 달력을 통해서 미래를 예상하며 상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적 주체는 인도 달력을 보면서 "어떤 숫자를 잘라내야 체크무늬 내일이 올까"라고 하면서 미래를 내다보고 있으며, "저울로 잴 수 없는 내일도 동물에 포함할까 봐"라고 하면서 내일에 신비로운 동물의 속성들을 결부시키고 있기도 하다. 시상 전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적 주체는 "내일은 우리의 노트를 심을 거야, 물 좀 줘"라고 하는데,

이러한 발상에서도 내일은 매우 특이한 속성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내일 심겠다고 하는 "노트"에는 "하고 싶은 말은 나비보다 나방이 좋다"는 말이라든가 "백합은 칠 년에 한 번 피는 마녀의 꽃이라고 불러야지"등의 괴담이나 주술과 같은 말들이 써 있는데 그것들이 발현되는 시간이 내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적 구도에서 일상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결국 일상이란 내일이라는 신비와 기대,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불가사의와 불투명성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린 화요일을 우선합니다

 

파스타만 먹는 고양이를 빌려오고

 

녹색 화병에 파르팔레 파스타 일 인분을 꽂는다

나비의 시간으로 30초 동안 나비가 된다

 

늦게 도착한 휘파람을 찧어 마법의 소금을 만든다

화요일에 맞춘 산사나무 식탁을 위해 높은 솔을 묶는다

 

악몽을 꾸고 난 다음 날

파스타를 만들어 생일이 태어나고 수국은 분홍으로 변하고

 

우선 푸른 나비를 고양이에게 먹인다

 

병아리콩이 뛰어다니는 화요일을 식탁 위

쓸데없이 즐거운 고양이를 앉히고

먹어, 프라이팬의 날씨야

 

고양이는

파스타와 레몬 어느 것에 가까울까

 

나는 새콤하게 와 익숙하게를 경멸한다 자라거나 익기를 거부한다

 

파스타와 나 사이의 화요일을

 

 

                                                                               -「우선 화요 파스타 전문

 

 

 

 

  "우린 화요일을 우선합니다"라는 시적 진술은 화요일을 특별한 요일로 간주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 화요일이 특별하고 중요한 요일이 되는 것인지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매우 응축되어 있기에 그 이유를 명증하게 추론할 수 없지만, "나는 새콤하게와 익숙하게를 경멸한다 자라거나 익기를 거부한다"는 시적 진술에 유의해 보면, 화요일은 새콤하지도 익숙하지도 않으며, 자라거나 익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화요일은 일주일이라는 일상의 주기 중에서 충분히 무르익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뭔가를 새롭게 출발하는 것도 아니어서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애매한 요일인 셈인데, 그러한 화요일을 시적 주체는 특별히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시적 공간에서 가장 특별한 시적 대상은 바로 '나비'가 될 것이며, 이 시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이미지로 넘쳐나고 있다. 우선 '녹색 화병'에 꽂히는 "파르팔레 파스타"가 있는데, 이것은 나비넥타이 모양의 파스타로서 시적 주체가 파르팔레 파스타를 언급하고 갑자기 "나비의 시간으로 30초 동안 나비가 된다"는 시적 진술을 펴는 것은 바로 파르팔레 파스타의 나비 모양 때문이다. 그리고 "푸른 나비를 고양이에게 먹인다"는 대목에서 푸른색의 나비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물론 푸른색의 나비 모양을 지닌 파르팔레 파스타를 지칭할 것이다. (이 시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 또한 나비의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옛날 노인들은 고양이를 괭이라고도 불렀지만, 대부분 나비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상기할수 있다.)

  그렇다면 시적 주체는 왜 화요일이라는 요일을 특별한 날로 여기고, 그 요일을 고양이라든가 나비와 연관 짓고 있는 것일까? "자라거나 익기를 거부한다"는 시적 진술에 다시 한번 주목해 보면, 시적 주체는 화요일을 아마도 길들여지지 않은 어떤 일탈과 파격의 속성과 결부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상력을 발동해 보면, 나비는 가장 불규칙적인 비행 궤적을 그리는 곤충이라고 할 수 있으며, 포식자가 그 비행 궤적을 예측하여 달려들 때 두 쌍의 날개를 이용하여 비행의 방향과 속도를 자유자재로 변화시켜 추적을 피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비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지그재그의 비행 궤적을 통해서 예측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비는 규칙적인 궤적으로부터의 일탈과 파격을 지닌 곤충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물론 이 시에서 파스타라든가 고양이가 나비의 이미지와 긴밀히 결부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속성을 공유했다고 상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에서 주목되는 점은 이신율리 시인의 신작에 등장하는 "마술"이라든가 "마녀"와 유사한 속성을 지닌 "마법"의 이미지이다. 마법의 이미지는 "늦게 도착한 휘파람을 찧어 마법의 소금을 만든다" 라는 대목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마법은 그야말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으로 불가사의한 일을 행하는 술법으로서의 역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마법의 소금"은 나비와 고양이의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는 파스타에 넣어질 것이기에 파스타와 나비, 그리고 고양이가 온통 마법의 자장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시적 구도에서 우리는 이신율리 시인이 단조로운 일상을 견디기 위해서 도입하고자 하는 것이 예측가능성을 벗어나 파격과 일탈의 잠재성이 질주하는 불가사의한 힘으로서의 마법과 마술 같은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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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열린시학』 2022년 여름호 -  젊은 시인의 視線, 詩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