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은 어디 갔을까
그 여름 능소화는 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바람도 불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동네 끝자락에 사는 할머니 댁으로 심부름을 갔다
“부추 좀 사 와”
나는 소쿠리를 들고 두 걸음씩 뜀뛰듯 날아가듯
능소화 보러 갈 때만 걸었던 걸음이었지
그러니까 능소화 걸음인 거지
기역자로 굽은 할머니의 허리를 보면 그 집 아저씨가 떠올랐어
키 크고 잘생겨 꼭 탤런트 같았던 아저씨와 키 작은 아줌마
아저씨는 퍽 하면 바람이 났고 아줌마는 퍽 하면 울고 다녔던 기억
그래서 할머니 등이 저렇게 굽었나 하는 생각을 하느라
얼마치 주세요 하는 얘기도 잊어버리고
능소화는 부추 밭가에 가죽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세상에 없는 꽃 같았어
어떻게 저런 빛깔로 대롱대롱 매달려 피느냐고
우리 집 마당가엔 가죽나무가 두 그루나 있는데 왜 능소화는 없는지
왜 가죽나무는 능소화를 부르지 않는지, 능소화를 알기나 하는지
능소화가 질 때면 아마 개학이었던 것 같아
그러니 나는 꽃이 지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다시 내년 능소화 필 때까지 그 할머니 댁엔 가지 않았으니까
다 저녁때, 하늘 끝에서 타오르던
그 아줌마의 전설 같았던 붉은 능소화
능소화가 피어야 여름이 와서 칠월이 되었지
그런데 그 여름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22년 7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