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운동*
기울어진 곳에 구름을 채운다
붉어지는 쪽으로 벼랑은 자란다
삭도가 길을 찢을 때마다
하늘에 그림자가 지천이다
머물 수 없는 사람들이 더는 늙을 수 없어
구름을 만드는 모운동募雲洞
별을 캐는 바다를 끌어올리고
감자 꽃은 달빛이 피우는 거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카나리아를 따라 탄광 안으로 들어갔다
새카만 개가 빳빳한 지폐를 물고 섰다 눈에 불을 켜고
극장과 우체국을 부른다 편지를 부치던 얼굴이 벽화 속
으로 들어온다 축제가 시작되고 필름이 느리게 돌아온
다 옥수수 밭 사이로 기차가 온다 양귀비꽃 붉던 자리에
산국 향이 나는 별을 꿀꺽 삼키고 새벽에 기차는 온다
거울 속 너머 잃어버린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
닫힌 갱도에서 겹겹이 구름을 열고
영화를 보고 화전을 굽던 사람들이 걸어 나온다
감자 꽃 주문을 외워야 문이 열리는 모운동
늘어진 전선줄이 팽팽하게 눈썹달을 업고 섰다
* 강원도 영월, 옥동 광업소가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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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오늘』 202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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