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비야, 나야/발표 시

해파리가 나를 부를 때 - 이신율리

by 이신율리 2023. 7. 13.

  해파리가 나를 부를 때   



온몸이 바다인 해파리를 생각해요 헤엄치는 것은 받아쓰기만큼 어려워서 당황하는 양치식
물을 좋아하죠 발끝이 북향을 향해 둥둥 떠내려가는 여름이었어요 소나기가 그친 후 깊은
곳을 찾은 건 우리의 선택이었죠 헤엄치는 걸 잊은 물고기처럼 동생이 먼저 수렁으로 쑤욱
들어갔어요 내가 등을 밀었을 수도 있어요 나는 갈비뼈까지 겁이 많았으니까

물 위로 세 번 솟구칠 때 안녕이라고 말했던 것 같아요 가라앉는 눈빛은 가라앉을 때까지
소중하죠 몇 개의 손이 자라나 손을 흔들뻔했어요 나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는
데 세상은 쥐 죽은 듯 고요 했죠 동생 손을 잡고 사라지지 않은 내가 침착했다는 소문은 쐐
기풀처럼 돋아나 빠르게 자라고 엉켜 단물만 들이켰어요

물고기가 목에 걸린 것 같아요 비가 와도 젖지 않는 물방울을 자꾸 뱉어내는 꿈을 꾸면서
받아쓰기 실력은 형편없이 줄었죠 여름이 오면 떠오르는 그 여름은 어디에 적을까요 지느러
미를 그리면 물고기가 사라져요 사라진 물고기는 미루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헤엄치지
않는 내게로 떨어져요

겁 많은 물고기는 모두 내게로 와서 이 봄을 잘 견디면 지느러미 파닥거리는 여름이 온
다고 귀밑까지 쫓아온 해파리가 나를 불러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와 편견』 202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