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도 별을 굽나요
물방울 자세 도라지꽃이 있는 힘을 다해 하늘을 터트리면 몸 안의 푸른 물고기가 뛰쳐나와요 손깍지를 끼고 속눈썹으로 부르는 노래는 글썽해지지 않아요 악보 없는 노래는 쓰면서 달고 너무 달아서 쓰다고 소태나무 아래 오래오래 서 있어요
꽃밭 귀퉁이에 도라지 타령 한 자락을 풀어놓았죠 그럴 때 살아 있는 노래가 마디마디 일어서 뒤꿈치가 바삭해지고요 가끔 헌혈 후 받은 영화표 한 장처럼 귀를 생략하기도 합니다만 집중하는 간격과 간격 사이에서 징이 울려요 뒤통수가 무성해지는 화요일은 십 년이 넘은 종합 선물 세트죠 잘못 그린 그림 속으로 물방울 같은 발을 내디디면 별을 굽는 보라의 나라에 닿을 수 있어요
노래는 일곱 번 바람 끝을 돌아온 새카만 풀씨였다죠 풀씨 저 혼자 손톱 밑이 까매질 때까지 꽃눈을 만들고요 살굿빛 목젖을 달싹거려 보는 거죠 바람 끝에 털어놓은 꽃가루가 흩어졌다 다시 모여요 눈 감은 시간만큼 고인 어둠이 어디서부터 훌쩍, 남물이 들까요 나는 얼마나 푸른 길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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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포스』 2022년 겨울 창간호
이신율리 시인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9년 오장환신인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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