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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살구

떠나가네..

by 이신율리 2007. 1. 29.

 

 

네가  2월에 태어났으니 꽉 찬 열 다섯살이다.

따뜻한 봄날 저녁 아빠와 함께 애견센터를 지나다가

2개월 된 너를 옷속에 품고 집으로 왔지

그때 형들은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이었어

태권도를 막 다녀와서 선물이 있는데 했더니

형들은 금방도 알아 맞추더구나

그렇게 너와 함께 15년의 세월은 시작되었지

 

처음 엄마가 참치캔 통조림을 너무 많이 줘서

집에 온 이틀 후 넌 그때 별나라로 갈  뻔 했었지

고개도 못들고 다 죽은 너를 안고

형아들 학교 가고 나서 얼마나 울었던지

 

수의사께서 계란 노른자를 먹이라고..

50%는 죽을것 같으니 준비하라고 하는 말씀에

엄마 눈에서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

다음날 노른자 삶아서 잘 먹였지요? 하는 소리에

엄마는 기절할 뻔 했단다

삶지않은 노른자를 너에게 먹였으니 그것이 미안해서

밤 3시에 쇠고기를 다져 먹이고 정성을 다해서

너는 말짱히 우리 곁으로 돌아왔지

 

그것이 미안해서인지 넌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십년이 넘게 건강히 아프지도 않고 기쁨을 주었다

 

별나게 목소리도 크고 달리기도 참 잘했지

가끔씩 볕이 고운날 강동아파트 뒷산으로 산책을 가노라면

얼마나 발발거리며 잘 뛰었는지

주일이면 널 데리고 산책을 시켰지 거의 달리는 수준이었지만

밖엘 데리고 다니지 않아서 엄마가 미안해서였어

언젠가 너를 데리고 삼익 아파트 공원으로 산책하던 중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넌 꼭 나르는 슈퍼맨처럼 뛰었어

엄마도 그 모습에 얼마나 신이 났는지

올림픽 마라톤 선수처럼 둘이서 힘을 다해 집을 향해 뛰었었지

그 모습을 고스란히 10층 배란다에서 큰형아가 보고 있었어

우리 삐삐의 달리기 솜씨를 인정받은 날이었지

 

 

 

11살 되었을 때도 밖에 나가면 은색 털빛깔이 이쁘고

엄마를 닮았는지 숫도 많아서 장가 보내라고 했을 정도로 우리 삐삐 인기도 많았지

산책하다 진돗개를 만나도 덤벼들던 용감성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웃어댔지

넌 최선을 다해서 달려 들었는데 말이야

식구아닌 이들에겐 많이도 싸남을 피웠지 네가..

 

유난히 높은데를 좋아해서 소파 꼭대기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너

12층 배란다에서 밖을 구경하는 것도 너에겐 유일한 구경거리였었지

맘껏 뛰놀던 그곳에서 집안 형편으로 지금의 작은 집으로 온 뒤로

건강이 한해 한해가 달라졌다.

혹 너에게도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무릎도 안 좋아지고 귀도 어두워지고 다행히 눈이 밝고

무엇보다 이가 아주 튼튼하니 수의사님도 굉장히 건강하다 했으니

스무해는 우리곁에 있지 않을까..

그런 안이한 생각에 더 큰 사랑을 주지 못해 가슴이 많이 아프구나

 

작년부터 기관지가 좁아져 가끔씩 캑캑거리는 소리에

밤잠을 설칠때면 네게 짜증도 냈었는데

넌 얼마나 힘들었을까?

널 위해 아빠가 마련한 작은 등불을 보고 꼭 잠이 들던 이쁜아

이젠 그 등불이 누굴 보고 잠이 들까?

 

다행히 네가 젤로 좋아하던 형아가 금요일마다 너를 만나

얼마나 네가 행복했을까

형아와 함께 산책도 많이 했으니 넌 복이 많긴 많았나 보다

그 보답을 가는 형아에게 네 모습을 보여주었구나 삐삐야

 

이사로 식구들은 각자 바쁘고

삐삐 혼자서 짐 정리 하는 모습이 걱정이 되었나보구나

어제도 물끄러미 바라보던 모습

언제나 맛나게 먹던 요구르트와 치즈도 마지막으로 겨우 조금씩만 먹더니

저녁부터 숨소리가 달랐었지

모두가 지치고 힘들때 우리 이쁜 강아지 힘드는 줄 조금밖에 몰랐구나

부대로 들어가는 형아를 힘들게 나와 엄마품에 안겨 안녕~ 을 했던것이

너를 가장 이뻐라 했던 큰형과의 마지막 인사였다.

 

어쩌면 넌 알고 있었겠지

군에 가서도 꼭 주일이면 아빠가 목욕시키고 형이 귀청소와 이쁜털을 곱게 말려주었으니

그때 네가 일어나 인사를 못했으면 형이 더 슬펐을게다.

집에 없던 작은 형아도 엇저녁엔 12시 반이 넘어 들어왔을때

힘들어 눕지도 못하면서 나가서 형을 맞았지

아빠 엄만 힘들어서 비몽사몽으로 잠깐 잠든사이

우리 이쁜 강아지는 힘들게 별나라 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낼 병원가자 그런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힘들거면 널 안고 곁에 있어 줄것을..

어제밤에 힘든 너를 안고 거울앞에서 삐삐야 엄마가 우리 삐삐 많이 사랑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삐삐야 했을 때 잠깐 엄마와 거울속에서 눈을 맞췄었지

그것이 너를 포근히 안아준 마지막이였다.

힘들어서 잠자리에 들었을때 엄마에게 잠깐도 안기지 못하고

답답해 바로 뛰쳐나갔던 너를

더 포근히 안아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새벽 2시 반 네가 별나라에 가는 시간

작은 형아는 엉엉 울면서 군에 들어간 형에게 전화하고

형은 그 시간에 너를 만나러 데리러 간 아빠와 5시에 집에 도착해

차가와진 너를 만지며 소리없이 눈물을 뚝뚝 떨구었지

형아도 군에 들어가면서 짐작을 했었단다.

 

어릴적 형아들과 뛰놀던 강동아파트 뒷산 기억하지 삐삐야?

그곳에 아빠가 만든 분홍자리에 네가 처음 입었던 달마시안 땡땡이 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왕밥 두개를 너에게 넣어주고

늘 네 집에서 너와 함께 한 말인형과 노랭이 친구 인형도 너와 함께 했으니

심심하지 않겠지.

자꾸만 너에게서 손을 떼지 않던 형아

가랑잎을 덮고 또 덮고..

이제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면 형아와 함께 오겠다며

새벽 5시 반

그렇게 깜깜한 새벽은 첨이었다.

 

아침 10시에 엄마는 네가 보고 싶어

집에서 40분 거리 너를 생각하며 산에 올랐다

까만밤에 네 자리가 괜찮게 자리를 잡았는지..

아~ 올라가 보니 오래전에 엄마가 소리연습하던 곳이더라

엄마가 좋아하는 까치밥이 빨갛게 꽃피우고

봄이면 향기로운 찔레꽃이 우리 삐삐와 친구해 주겠지

엄마가 손을 얹고 삐삐야 또 올께

삐삐의 우렁차게 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담에는 울지 않을께 삐삐야 사랑해~

따뜻한 나라에서 답답하지 않게 맘껏 뛰놀으렴..

 

 

2007. 1. 29.          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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