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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모란과 작약

감나무의 기분

by 이신율리 2019. 11. 21.

 

 

 

감꽃,  감씨, 땡감, 홍시감, 단풍까지 감나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등생 같다 

 

감나무는 약해서 대둔산 자락에서 곶감을 하는 고모부가 두 번이나 떨어졌고

두 살 터울 이모와 함께 엄마 몰래 감 줏으러 다녔던 새벽을 깨워준다 

 

장독대에서 쪼글쪼글 말라가던 감꽃의 기억을 듣는다 

 

책 읽다 덮어두고 동네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가을이 가기전에

주택가로 올라간다. 사람 사는 것 같다 

 

덕소로 이사 온지 3년, 가끔 모르는 골목을 찾아 돌아다닌다

남편과 같이 걸으면

저긴 지난 번에 갔었다. 저기로 가면 바로 저 골목이 나오는데 뭐하러 가냐고...  음, 혼자 가는 게 좋아

온통 감나무다. 짹짹거리는 새 천지다

 

 

 

 

옆에 대추나무는 다 털렸구만

왜, 감은 그냥 뒀을까, 작은 대추나무가 불만 투성이다

새 새끼들 엄청 날아드네 살 찌겄다 짜식들아 적당히 먹어 ~

 

 

 

 

 

감색깔은 주홍이라고 부르기도 아깝다. 색깔 하나 만들어야겠다

무순을 엮는 아줌니 밭을 지나간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받든 안 받든, 뭔 처자가 갑자기 인사여~  대충 이런 표정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봉감이 오만 팔만 개는 열린 감나무를 폰에 담는다  

대문 틈새로 보니 집주인 아저씨가 마당안에서 왔다갔다 하는 게 보임, 대문 잠겼음

 

나 - 큰 소리로 아자씨 감은 일부러 저렇게 안 따고 두신거에요?

아자씨 - 아무 대답 없음

나 -  아까보다 더 크게 아자씨 감은 일부러 안 따신 거에요?  캑캑~~

끝을 살짝 올려서 들릴 만큼 큰소리로 물었는데 분명 들었을 텐데

대꾸 없이 마당만 소리 내 쓸고 있다.

 

갑자기 감나무 기분이 궁금하다

감 이파리도 이래 저래 다 쏟았는데 무거워 잠도 안 올 것 같은데, 죽을래야 못 죽어 하던 우리 할머니도 생각나고 ...

 

대문 틈으로 들여다 봤더니 세상에나 마당 끝에 포도가 여태 주렁주렁 달려있다

오모나!  이건 무슨 조화 속

새를 사랑하는 아자씨? 새가 많긴 하더라, 그래도 그렇지

감이 너무 많아서 새들이 헷갈릴 것 같으니까 좀 솎아주세요

포도는 따서 포도주라도 담으시던가 하시지

새들이 날도 추운데 씨 발라먹게 생겼어요 궁시렁궁시렁~~&%$@&*

 

아자씨 문 열 기색이 없다 마당 쓰는 소리만,

마당 다 패이겠다 우물되겠다 하면서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데

 

 

 

 

 

햐~  노란 지붕

너 참 가을 들어 한 일 치곤 꽤 잘한 일이다

그러면 그렇지 바닥에 쏟지말고~ 내년에 두고 보겠어

 

잠깐 동안, 모르는 세계에서 감나무 기분을 살폈다

 

 

 

2019년 11월 22일         감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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