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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발표 시

제 8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작 - 모르는 과자 주세요 , 이신율리

by 이신율리 2019. 12. 11.

                          

모르는 과자 주세요

/ 이신율리    

                                              

 

아는 과자는 어제 다 사라졌어

달콤한 맛을 알기 전에 사라져서 다행이야

사과는 계모가 다 먹어치웠지 내겐 사과 대신 다크초콜릿만 주고

 

유혹하지 마, 모르는 것은 달콤하지

 

계모를 동그랗게 묶어 마카롱을 만들었어

빨주노초파남보 다음은 분홍이 되는 이상한 나라에서

서로 모르는 가족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거짓말 두 개 넣고

 

맛없는 크림이 자랄 때까지 과자는 햇살의 공식을 모른다고 했지

 

빵, 터지는 멘토스와 다이어트 콜라 폭발하는 계모가 좋아

 

폴란드초코와플 테니스공껌 턱 빠지는 풋젤리 모르는 과자 주세요

 

쓴맛도 알고 싶어?

쓴맛이 아는 과자를 안다고 먹고 칡촉

아는 과자가 모르는 과자를 모른다고 먹어치워 악마의 잼 누텔라

 

계모의 주머니가 깊어지고 있어

아는 과자만큼 손목이 따뜻해져 거울아 거울아

 

주머니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츄파춥스 일곱 가지 맛을 빨면서 모르는 과자를 찾아가지

 

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 8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작

《문학의 오늘》 2019년 겨울호 발표

 

 

 

 

 

 <당선 소감>

 

날개가 없는 것들은 무거웠다 휘파람 도돌이표 수국화분  

검은색 은반지를 끼고 주먹만 한 시계를 찼다 초침은 느리고 나는 빨랐다.

새는 뚝뚝 떨어지고 태양은 어느 쪽으로 뜨는 줄 몰랐

      

‘거기 별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꿈과 희망’은 있을 거라고 말했다 기울어지는 쪽으로 등을 걸었다

그린벨트가 풀린 밤나무 숲은 젖어있었다. 밤송이는 떨어지고 나는 머리숱이 많았다

기억만큼 문을 열어야 하니까, 다람쥐를 만나 초록을 켰다.

이제 길을 건너야 해, 궁금한 것들이 한꺼번에 출발했다   

 

길 열어주신 나의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상상력을 끌어내 시가 되게 해 준 이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 고맙습니다 멈춤 없이 끝까지 걸어가겠습니다  

 

부족한 시의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평>

 

 

  통통 튀는 감각으로 무장한 자유로운 상상력은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리듬을 통해 그 상상력에 생기를 불어넣는 점은 그의 시가 지닌 큰 장점이었다.  

  이런 점은 다른 응모작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력이었다. 그럼에도 거칠지 않고 과하지 않으며 매끄럽게 시를 진행하는 솜씨는 그가 만만치 않은 내공의 시간을 거쳐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는 과자는 어제 다 사라졌어”라고 시작하는 그의 시 <모르는 과자 주세요>는 흔한 백설공주 계모 모티프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  다양한 과자의 감각과 발랄한 리듬과 어우러지며 상식적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며 우리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로 데려간다. 결국 “모르는 과자”란 ‘모르는 세계’의 상관물이며, 그 세계로 진입하려는 자의 불안을 아이러니하게도 발랄한 리듬과 감각적인 이미지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시에서 상식 세계의 윤리를 대상에게 들이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대상에 대한 역설적 접근이 가능해지며 이러한 점급을 통해 새로운 윤리가 발생한다.  

  이것이 그가 보여주는 “모르는 세계”의 모습이다. 다만, 그의 시에서 일상적 정황에 너무 도드라질 때 감각과 리듬만 남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점은 그의 시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아쉽게 당선에서 밀려난 분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곧 좋은 소식으로 만나게 될 것을 믿는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그가 지금보다 훨씬 더 ‘모르는 세계’로 그의 시가 통통 튀며 뛰어나가길,

  그래서 우리가 더욱 자유로운 상상력의 언어로 우리 세계를 다시 창조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우리 시의 영토가 조금쯤 넓어지겠다. 정진을 빈다.

    

심사평 : 김근, 안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