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석화
판소리를 하는 그녀는 나보다 열 살이 어리다
만난 지 스무 해도 넘었다
장흥 바닷가가 고향이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가 몇 살이에요?"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허구 많은 질문 중에 ...
"우하하하 웃으면서 결혼 안해서 아이가 몇 살인지 몰라요"
얼마나 무안하던지 내 발등을 찍으면서,
그렇게 호탕한 그녀였지만 지나고 보니 마음이 여리고 순박했다.
우린 금세 친구가 되었고
그 후,
그녀 결혼식에 갔고, 아이 돌잔치에 갔고, 그의 어머니 칠순에도 갔다
칠순 잔치에서 어렵게 '회심곡'을 부탁했지만 그때 하필 목감기가 심해서 못 불러 준 것이 지금까지 걸린다.
결혼해서 지금은 아홉 살 아들과, 일곱 살 먹은 이쁜 딸을 키우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지난번 전화 통화에서 "아들 대금 독주한다"했더니 한참을 말이 없다
"언니 소리를 허고 있어야 할 내가, 소리도 못 허고 지금 뭣허고 사는지 참말 깝깝혀서 못 살겄네"
그대가 많이 힘들구나
그래서 요즘엔 공연 소식은 아주 안 듣고 귀 막고 산다고
"진욱이 공연은 포스터라도 보내주소 사진으로라도 볼랑께"
아들과 공연도 같이 해서 식구들과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아래 사진 대금잡이가 아들 대학교 때)
지금은 서울에 살지만 바쁜 핑계로 자주 보진 못한다.
설 때마다 고향 다녀오는 길에
내가 다른 사람에겐 못해도 우리 언니한텐 장흥에서 젤루 맛있는 석화는 맛 보여야지 한다
차가 막혀 밤 11시 반에 도착해서 너무 늦었다고
집에는 못 들리고 석화 한 박스 내려놓고 간단다
밖에서 잠깐 안아 보고
밥 한 끼도 못해주고 그냥 보내 버렸다
석화를 보니 파도소리에 얹은 판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귀를 세운다
꿋꿋한 소리 한대목이 내게로만 밀려오는 것 같다
그녀가 잘 되기를, 어서 소리판으로 나서기를
언젠가 "언니 우리 둘이서 발표회 한번 하세" 그러던 그녀가
굵직하고 꿋꿋한 소리로 다시 반듯하게 설 수 있기를...
2020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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