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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모란과 작약

판소리와 석화

by 이신율리 2020. 1. 22.

 

 

 

 

 

 

 

 

판소리와 석화

 

 

판소리를 하는 그녀는 나보다 열 살이 어리다

만난 지 스무 해도 넘었다

장흥 바닷가가 고향이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가 몇 살이에요?"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허구 많은 질문 중에 ...

"우하하하 웃으면서 결혼 안해서 아이가 몇 살인지 몰라요"

얼마나 무안하던지 내 발등을 찍으면서,

그렇게 호탕한 그녀였지만 지나고 보니 마음이 여리고 순박했다.

우린 금세 친구가 되었고

그 후,

그녀 결혼식에 갔고, 아이 돌잔치에 갔고, 그의 어머니 칠순에도 갔다

칠순 잔치에서 어렵게 '회심곡'을 부탁했지만 그때 하필 목감기가 심해서 못 불러 준 것이 지금까지 걸린다.

 

결혼해서 지금은 아홉 살 아들과, 일곱 살 먹은 이쁜 딸을 키우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지난번 전화 통화에서 "아들 대금 독주한다"했더니 한참을 말이 없다

"언니 소리를 허고 있어야 할 내가, 소리도 못 허고 지금 뭣허고 사는지 참말 깝깝혀서 못 살겄네"

그대가 많이 힘들구나  

그래서 요즘엔 공연 소식은 아주 안 듣고 귀 막고 산다고

 

"진욱이 공연은 포스터라도 보내주소 사진으로라도 볼랑께"

아들과 공연도 같이 해서 식구들과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아래 사진 대금잡이가 아들 대학교 때)

지금은 서울에 살지만 바쁜 핑계로 자주 보진 못한다.

 

설 때마다 고향 다녀오는 길에

내가 다른 사람에겐 못해도 우리 언니한텐 장흥에서 젤루 맛있는 석화는 맛 보여야지 한다

차가 막혀  밤 11시 반에 도착해서 너무 늦었다고

집에는 못 들리고 석화 한 박스 내려놓고 간단다

밖에서 잠깐 안아 보고

밥 한 끼도 못해주고 그냥 보내 버렸다

 

 

 

 

 

 

석화를 보니 파도소리에 얹은 판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귀를 세운다

꿋꿋한 소리 한대목이 내게로만 밀려오는 것 같다

 

 

 

 

 

그녀가 잘 되기를, 어서 소리판으로 나서기를

언젠가 "언니 우리 둘이서 발표회 한번 하세" 그러던 그녀가

굵직하고 꿋꿋한 소리로 다시 반듯하게 설 수 있기를...

 

 

 

2020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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