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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모란과 작약

오뎅

by 이신율리 2020. 2. 16.

 

 



 

 

 

 

 

오뎅

 

  
생선 살을 갈아 전분이나 밀가루를 넣고 빚어서 기름에 튀긴 음식

맞춤법 검사기는 어묵이라고 일러준다. 나는 오뎅이라고 쓴다.

엄마는 덴뿌라라고 하는데 그럼 튀김이 얼마나 빠르게 달려와 밑줄을 그을까

 

영양보다는 맛이라고 써놓고 오뎅은 좋아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오면 가짓수 채우려고 나왔네 까칠한 성격이 살아난다 그래도,

후후 불면서 뜨건 국물 목으로 넘기고

적당히 불어 넌출거리는 오뎅 양념장에 꾹꾹 찍어 먹는 모습은 

어쨌거나 살아있는 겨울 풍경이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엄마는 중학생인 동생을 강경으로 전학시키는 바람에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돌산 꼭대기에서 남동생 둘을 데리고 자취를 했다.

여고시절 나는 강물 같은 누나에서 천천히 사감 같은 누나로 변신 중이었다.

내 공부보다 더 집중해서 장풍을 썼다.

만화방에서 잡아오기, 공부 안 하고 잠자는 눈꺼풀 뒤집기, 등짝에 찬 손 넣기, 발바닥 꼬집기

 

겨울날 자취방 풍경은 거의 고드름 수준

하루 연탄 한 장에 밥하고 국 끓이고 물 데워 세수하고

불구멍은 꽉 틀어 막아 두니 방바닥은 따뜻해질 시간이 없었다.

 

오뎅 얘기를 꺼내면 우리는 만장일치로 눈빛이 반짝거렸다.

작은 오뎅 한 봉지를 사 와서 큰 솥에 물을 붓고 끓였다.

 

 

셋이서 이마 맞대고 앉아 국물 한 그릇씩 홀짝거리다 보면 금세 바닥이 보였다.

그럼 또 물 한 솥 펄펄 끓였다. 기다리는 시간은 가끔씩 어느 대목에서 멈추기도 했다. 

그때 그렇게 깜깜했던 하늘은 별을 만드는 중이었다.

 

 

오뎅은 해탈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 어른 손바닥 만하게 불어 터졌다.

마치 펴놓은 노트처럼, 그곳에 뭐라도 끄적여야 할 것 같았던 날들은

끓여도 끓여도 넘치지 않고 찰람거렸다

 

감히 오뎅 볶음은 꿈도 못 꾸고 국물이 채웠던 겨울

내 사전에 오뎅 반찬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다.

그래도, 생선을 갈아 만든 칼슘이 지금쯤 내 뼈에 도움을 주려나 생각하면

오뎅이 뒤돌아서 입을 가리고 웃겠다.

 

 

 

 

 

오늘 저녁엔 황금 레시피를 찾아 오뎅 뭇국이라도 끓일까

깜짝 놀란 물고기가 펄쩍 뛰어 국물 속으로 들어가겠다. 속이 시원하겠다.

 

 

 

* 오뎅은 어묵으로 써야 맞다. 그 시절을 추억하느라 오뎅으로 썼다.

 

 

 

 

2020년 2월 16일   살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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