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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모란과 작약

아욱국

by 이신율리 2020. 7. 12.

 

 

 

 

아욱국은

미끈거린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좋다는 사람도 있고

여름엔 문 닫고 막내 사위만 준다는데

야야 여름이 아니구 가을여, 전화기 속 이모가 그런다

내겐 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을에 자랄 아욱도 없다

 

아욱이 자란다.

텃밭을 주신 할아버지네 밭에서

아욱꽃은 잎겨드랑이에 연보랏빛 테두리를 두르고 모여 핀다

꽃말은 "은혜"라니 어째 아욱국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무궁화도 아욱과, 자세히 보면 무궁화꽃을 축소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뼈 건강에 좋은 칼슘과 단백질이 시금치 두 배나 된단다

 

뜯어다 먹을 것 있음 다 뜯어요. 저 아래 머위대도 베고 조선파도 뽑고 할아버지 말씀이다

성격은 활달해도 주변머리가 없어 손에 쥐어주지 않으면 못하는 성격이다

그때부터 아욱국을 끓이기 시작하는데

아욱이란 식물이 뜯고 돌아서 사흘이면 또 뜯을 만큼 새 잎이 나오는 거다 부지런 키도 하지

아욱 뜯는 내 손과 누가 이기나 내기라도 하듯이

생각해 보니 여태껏 먹은 아욱국보다 올여름 먹은 것이 더 먹었구나

 

어린 날

커다란 마당을 지나 사리문 밖에 텃밭이 있었다

그곳엔 달리아, 봉숭아, 분꽃, 시월국화가 핀 화단보다 골고루 작은 꽃들이 더 많이 피어있었다

호박꽃을 선두로 부추꽃이 피었고 쑥갓, 가지, 상추꽃이 한 겨울 빼곤 다 피었던 걸로 기억하는 걸 보니

누구도 꺼낼 수 없는 창고 깊이 넣어둔 기억이다

 

한 여름 점심때 엄마는, 상추를 뚝뚝 뜯어다 겉절이를 하고 아욱국을 끓였다

쌀뜨물에 멸치, 된장을 풀어 끓으면 바락바락 씻어 손으로 쥐어뜯어 넣던 아욱국

뜨건 아욱국에 풋고추, 호박, 가지무침이 차려진 상 앞에 앉으면

사랑방 뒤 대밭에 바람소리는 왜 그렇게 시원하던지

마당가 배나무엔 새파란 배가 디룽거렸다

 

아욱국을 끓이다 보니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은 이유는 왜일까? 

아욱국 하나로도 어른이 될 수 있구나

내가 끓이는 아욱국엔 얼마나 많은 여름이 들어 있을까  

아욱을 손으로 쥐어뜯는 모습만 엄마 솜씨를 닳은 것 같다고

치마 아욱 따라 너펄거리며 웃는다

 

 

2020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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