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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살구

할머니

by 이신율리 2006. 10. 22.

 

 

 

올해 아흔 여섯 되신 우리 할머니

할머니 살구왔어요 하면

귀가 어두워 꿈쩍도 안하신다

귀에 바짝 대고 기차 화통 삶아먹은 소락배길 질러대믄

아항~ 살구왔니? 언제 왔어~

작년에 돌아가신다고 우루루 병원에 몰려 갔었는데

내 손을 잡고 할머니 소싯적으로 돌아가

네 아버지 군대 두번 가는데 찾아갔더니 바로 떠난 이야기부터

목소리에 힘이 넘치더니 돌아가시긴 100살은 사시겄네

모두가 재미나게 궁시렁~ 궁시렁~

 

울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선물은 쌍화탕이다

내가 쌍화탕을 사들고 가면 한병 따서 벌컥 벌컥

그려~ 내가 오래 살면 다 네 덕인 줄 알련다~

하하~ 할머니 지금도 무지 오래 사신건데 하고 주절거린다

울 할머니 귀가 어두워 내 얘길 하나도 못 들으시니.. ㅎ

 

그러시던 할머니 엇그제 시골에 내려갔더니

고추밭에서 풋고추 골라 따시느라

돌아 다니실 땐 저리 지팡이를 짚으시고

볼은 꼭 여인네 볼터치 한 것처럼 불그스레 이쁘시다

어려서 동생 재울 때

청사~~ㄴ 리~ 벼어~ㄱ 계에 수야~ 하시며

시조로 자장가를 부르시던 할머니가

어느새 백살을 바라보시네

하기사 나도 이제 이리 나이를 먹었으니..

 

 

 

 

 

감을 무지 좋아하는 내게

단감 쓱쓱 문질러 먹으라 하시고

저리 붉은 감 가지를 꺽어가라고 성화시다

한가지 꺽으면 하나 더 꺽어다 방에 걸어놔 하시며

살구를 닮아 고운 걸 아시는지..

웃는 모습이 천진스러워

그냥 나도 같은 모습으로 따라 웃는다.

 

 

 

 

시골집에서 바라본 건너 마을 풍경

올핸 태풍도 없이 지나서 더 풍년이네~

어릴때 저리 먼 건너 마을까지 다 들리도록 울어 제꼈대지 내가?

그래서 목청이 진즉 터졌다고..

우리 소릴 하지 않았으면 그 소리로 바가지만?? ㅋㅋ

  

 

 

 

아침에 일어나 뒷산을 보니

억새꽃 뒤로 안개꽃이 만발하였네

어릴적 추억이 스멀거리듯

작은 아이가 튀어 나올 것만 같아

한참을 서 있었네

 

고향.. 좋으네

따스하고 다정하네

할머니가 있고 아버지 엄마가 있고

뛰어놀던 내 유년의 동산도 그 자리에 있어

내 고향이 마냥 좋으네

 

 

 

 

 

 

2006.  10.  20                杏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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