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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이 다 지나네요 아침부터 눈이 펑펑 내려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작은 산에 올랐습니다 아무도 없는 산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낮엔 앞에 공원에 나가 걸작품들을 감상했습니다. 눈사람은 왜 사람일까 생각하면서 눈사람을 만든 상상력이 올핸 더 깊어져서 좋았습니다. 저녁땐 호만천으로 눈 구경을 나갔습니다. 여기쯤에서 기차가 지나가면 좋겠다고 한참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기차가 다 지나가고 혼자 뒹구는 눈발이 좋았습니다. 한 해 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웃는 일 많으시길 기도합니다. 이신율리 드림 2023. 12. 30.
국화봉고프러포즈 - 이신율리《시로여는세상》2023년 가을호 국화봉고프러포즈 마드리드 산히네스에서 추로스를 먹던 아침, 터키석 하늘에 태엽을 감았지 몇 바퀴를 돌렸으면 팝콘이 터졌을까 우리가 다시 만났을까 끈적이는 생각에서 발을 빼면 어두 워지는 한강가야 오리 가던 길 되돌아오고 강물 소리 맞춰 봉고 돌아오고 트렁크를 활짝 열었어 풍선이 떠오르는 하늘이 넘쳐났지 그녀는 프릴 없는 원피스를 입고 초코라테 셔터를 눌렀지 펄 립글로스 없이도 사진 잘 받겠다고 오늘 거울은 마 음에 든다고 추로스를 먹던 아침 총소리를 내면서 날아가는 새를 보고 네가 웃었던가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애드벌룬이 둥둥 떠올랐지 너는 커다란 프릴칼라 블라우스를 입고 제라 늄 화분이 자꾸 시든다고 말했지 크리스마스 앵두 등을 켰어 출렁거리는 여수 밤바다 볼륨 높였지 노란 꽃송이가 불쑥 불쑥 피어나.. 2023. 12. 9.
영하 3도 기온이 영하 3도로 내려가면 배란다 밖의 꽃들이 배란다 안으로 들어온다. 사진보다 두 배가 되는 꽃은 거실 배란다에 있고 이 아이들은 내 책방 배란다에 있다. 풍로초는 초겨울을 모르고 대문자초는 초겨울을 안다. 주로 내 방 배란다는 계절 관찰하기 좋은 꽃이나 나무로 모인다. 눈 펑펑 내릴 때면 매화가 피겠지 매화가 지고 나면 잎사귀가 피겠지 털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봄인거지 겨울은 쉬 지나갈 것이고 봄은 머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면서 겨울을 날 것이다. 나는 그네들에게서 내가 모르는 계절을 배운다. 2023년 11월 14일 2023. 11. 14.
테스트 테스트 자기와의 싸움이란 말을 “운동”이란 단어에서 찾는다. 중학교 때 4, 19일이면 왜 십 리 길 마라톤을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2등을 했다. 후로 나는 엄청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로 떠올랐다. 단거리는 못한다. 겨우 운동회에서 노트, 연필 몇 번 탔던 기억 외에는 그러니까 나는 장거리에 장점인 편이다. 모든 일에 쉽게 승부를 보려고 하는 편이지만 안 되어도 쉽게 때려 치진 않는 편이니 단점인지 장점인지 모르겠다. 30대 초반 헬스를 할 때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스쿼트를 2,000번 하고 계단을 못 내려온 적이 있다. 무릎 부서지지 않기 다행이다. 그땐 여자들이 헬스를 하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아니었나 보다. 첫 회 ‘미즈 코리아’에 출전해 보면 어떨까요? 하고 체육관 관장님이 말해서 나는 ‘한.. 2023. 11. 10.
엄마와 목포 3박 4일 해상 케이블카 타기 전 엄마와 장난 치기 케이블카 타고 고하도 선착장에서 내려 바닷길을 걸었다. 14,000보를 바다로 산으로 걸었다. 엄마는 민어회 정식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엄마는 86세 나이에도 모험을 좋아한다 나도 닮은 것 같다 겁은 내가 더 많다 적산가옥에서 차를 마시면서 지난해 목포에 왔을 때 코롬빵 제과에서 먹었던 빵이 생각났다 이렇게나 많은 빵을 먹었더니 2키로 늘었다 하얀 빵, 꼭 베게 같은 빵이 젤 맛있었음 유달산 아래 "성옥 박물관"에서 산호로 깎은 저 물건 가장 신기하다고 미술관에도 갔고 엄마와 강경에서 기차를 탔다 느리게 황금 벌판을 달리고 싶어 무궁화호를 타고 갔다 들판보다 엄마가 더 황금빛이었다 목포 역 앞 가족 호텔, 여기 저기 오가기가 좋았다 케이블카로 유달산에 올랐다가 산.. 2023. 10. 27.
와플 좋아하세요 - 이신율리《시로여는세상》2023년 가을호 와플 좋아하세요 ​ ​ 오늘 마감, 이라는 글자를 쓰는데 헤어졌던 연인들이 돌아오네요 진주 설탕 덩어리처럼 손님은 쉬지 않고 새롭습니다 ​ 새로 만난 연인들의 생크림이 더 달콤할 리가 그럴 리가 있습니다 접었던 귀를 다시 펴는데 ​ 컴컴한 길을 가는 사람들의 구두코는 반짝이고 저녁과 초코의 관계는 거꾸로 매달린 장미 같아서 잊지 않고 블루베리의 밤이 찾아옵니다 ​ 통 블루베리 와플 주세요 오독오독 씹히는 소리는 감추고 변함없이 쓸모 있는 같은 메뉴 좋습니다 ​ 크림과 크림 사이에서 만난 사람들은 오늘 조기 마감, 전에 영화를 보고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면서 와플을 굽고 식히는 과정을 기다리죠 ​ 설탕 대신 소금 뺐어요 단맛은 반복하는 재미죠 와플와플 하면서 꺾어지는 풍선 인형의 손짓이나 골목을 구부리는 고.. 2023.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