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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 여고 시절엔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넜지 갈대가 뒤섞인 바람소리를 듣거나 떠내려가듯 건너는 뱃머리에서 보는 건너편 풍경은 닿아도 닿을 수 없는 세계 같았지 키 큰 미루나무를 지나고 모래밭을 흔드는 아스파라거스를 만나고 털실 같았어 이런 빛깔 스웨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열여덟이 좋아했던 초록 뭉치 가을이면 새빨간 씨앗을 선물로 달았으니 내가 초록과 빨강을 뒤섞는 이유야 꽃을 많이 키우면서도 동네 마트에 가면 꽃을 기웃거린다 어, 이거 아스파라거스? 맞다 추위엔 강하지만 건조해야 하고 햇빛이 좋아야하고 동향이라서 겨울엔 빛이 많이 부족한데... 그래도 안고 나왔다. 지금 그 시절을 불러내야 할 것 같아서 남편은 그걸 뭐하러 샀냐고는 하지 않았다. 나를 닮아 머리숱이 많다고는 했다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 2022. 1. 20.
세계일보 신춘 문예 시상식 세계일보 사장님과 “오늘의 기억으로 최대한 멀리, 최대치의 마음으로 시를 쓰겠습니다. 봄이 오는 기운처럼 노력하겠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대강당에서 열린 2022년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시 부문 수상자인 이신율리 시인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이 시인은 이번 신춘문예에 비가 내리는 풍경 속의 모습과 생태, 관계를 인생론적 깊이까지 파고든 시 ‘비 오는 날의 스페인’으로 당선됐다. 수상자들은 이날 시상식에서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다며 앞으로 좋은 글을 쓰겠다고 입을 모았다. 단편소설 부문 수상자 박민경씨는 “글쓰기는 크고 작은 도전 중에서 가장 잘하고 싶고, 가장 오래 하고 싶으며, 가장 솔직하고 싶은 것”이라며 “지치지 않고 끈.. 2022. 1. 18.
웹진 시인광장 포엠 리뷰 -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경향신문 당선작)/ 비 오는 날의 스페인(세계일보 당선작) - 백가경,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이신율리, 「비 오는 날의 스페인」,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2021년 6월호(2020, June) 주체적 존재로서의 사물들(4) - 이성적 논리적 상상력과 감성적 체험적 상상력 (이신율리의 「비 오는 날의 스페인」과 백가경의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에 대하여) 김명철 시인 ​ 이 글에서는 2022년 신춘문예 당선시들 중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 확연히 다른 두 편을 선정하여, 두 시편에 나타난 상상력의 성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실제의 현상에 기인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시인광장의 앞선 포엠리뷰들에서 그 근거를 .. 2022. 1. 16.
오늘 일기 2022년 1월 15일 2022. 1. 15.
오일장 시어머니 어머님은 영월 오일 장에서 장사를 하신다 새해 여든 여덟 우리 어머니 이 날은 상추와 냉이를 파셨고 무 말랭이와 고사리를 파셨고 동강물은 흘러가고 흘러갔고 살림은 별로 깔끔하지 않으시지만 장에 내다 팔 것은 엄청 다듬으시지, 안 그러면 안 팔린다고 어머니 몰래 찍었다. 손끝까지 죄송스러웠지만 이 모습도 기억하고 싶어 메고 오신 가방을 깔고 앉아 중국산 옥수수를 드시고 나는 푸성귀가 팔릴 동안 괜히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2022년 1월 10일 2022. 1. 10.
그림 몸통 없이도 사람이 될 수 있는 그림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피카소 아이가 그린 이 그림은 뭘 그린 걸까요? 2022년 1월 8일 2022. 1. 8.
비 오는 날의 스페인 -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비 오는 날의 스페인 - 이신율리 죽는 사람들 사이로 날마다 비가 내린다 사과는 쓸모가 많은 형식이지 죽음에도 삶에도 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 코바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 를 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 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 삼아 한판 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 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 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철든 애가 그리는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오토바이를 탄 새가 매운 바다.. 2022. 1. 2.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2022년 신춘문예 당선작을 발표합니다.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단편소설 ‘살아있는 당신의 밤’ 박민경 ■ 시 ‘비 오는 날의 스페인’ 이신율리 ■ 평론 ‘허수경 후기시론―자연의 고아, 시간의 낙과, 우주의 난민’ 육호수 ■ 심사위원 ▲단편소설= 본심: 김화영 전경린 서하진, 예심: 정길연 해이수 오태호 ▲시=본심: 안도현 유성호, 예심: 천수호 김종태 ▲문학평론=김주연 * 시는 1월 3일자 세계일보에 실립니다. 2022. 1. 1.
염소 - 이신율리 《시와 편견》2021년 겨울호 염소 - 이신율리 봄이 오면 아버지는 염소 새끼를 끌고 왔지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내 다리를 묶었 어 냉이꽃 들판을 휘돌아 쳐도 심통은 풀리지 않았지 염소는 뒤꼍에 꽁꽁 묶어놓 고 닭장 속에 갇힌 거위 등에 올라타 마징가 제트처럼 날고 싶었지 뿔 자리가 아 직 벌어지지도 않은 애송이가 대가리를 번쩍 쳐들어 내 봄을 파먹었어 딱 한 번 이라도 배때기를 걷어차 풀밭에 쫙 뻗었어야 했는데 그때 내 눈엔 네가 아버지로 보였어 수업료 안 냈다고 벌서던 일이 자꾸만 떠올랐거든 * 하얀 꽃은 구겨 삼키고 싶다 구름 아래 냉이꽃을 꺾는다 최신 가요에 맞춰 춤을 추면 봄비가 내릴 거라고, 점점 하늘이 내려오고 뿔이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웃음 소리가 지겹다고 화성으로 날라버린 그를 찾으러 갔다 그는 쭉 빠진 알파고 옆에 끼고.. 2021.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