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비야, 나야469

영광 택시 - 이신율리 《열린 시학》2022년 여름호 영광 택시 - 이신율리 발걸음을 세는 일은 맑거나 흐려지는 날씨 그걸 숫자로 바꾸는 일은 잘라버린 꼬리가 자라는 동안 뒤축이 닳은 미터기를 고친다 행진곡을 따라 떠났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미안해요 난 이제 지도가 없어요 어떤 꼬리들도 그렇다 미터기 속 아이 웃음소리가 살고 새로 난 길이 가라앉거나 떠오르지 않는 살림살이가 좌표도 없이 떠 있다 답은 0이 되거나 밥이 익는다 해나고 바람 불지 않아도 뒤축이 닳는 오늘 반숙 달걀이 첫눈 내리는 표정처럼 명랑할 수 있다면 돼지비계의 마술처럼 사월이 끓거나 씀바귀처럼 알약이 써도 되겠지 더 이상 소화할 것이 없을 때 빈 영수증에 얼굴을 덜어 적는다 빨간 신호에도 멈추지 않는 숫자는 자다가 그린 그림 같아 겹치는 색이 많을수록 정지 버튼을 눌러 공터마.. 2022. 7. 11.
우선 화요 파스타 - 이신율리 《열린 시학》2022년 여름호 우선 화요 파스타 - 이신율리 우린 화요일을 우선합니다 파스타만 먹는 고양이를 빌려오고 녹색 화병에 파르팔레 파스타 일 인분을 꽂는다 나비의 시간으로 30초 동안 나비가 된다 늦게 도착한 휘파람을 찧어 마법의 소금을 만든다 화요일에 맞춘 산사나무 식탁을 위해 높은 솔을 묶는다 악몽을 꾸고 난 다음 날 파스타를 만들어 생일이 태어나고 수국은 분홍으로 변하고 우선 푸른 나비를 고양이에게 먹인다 병아리콩이 뛰어다니는 화요일을 식탁 위 쓸데없이 즐거운 고양이를 앉히고 먹어, 프라이팬의 날씨야 고양이는 파스타와 레몬 어느 것에 가까울까 나는 새콤하게 와 익숙하게를 경멸한다 자라거나 익기를 거부한다 파스타와 나 사이의 화요일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계간 『열린시학』 2022년 .. 2022. 7. 9.
내일, 인도 달력 - 이신율리 《열린 시학》2022년 여름호 내일, 인도 달력 - 이신율리 해를 쪼아 먹는 오늘을 쫓았어 인도니까 나뭇가지 끝에 아이들이 매달려있어 점박이 여우나 붉은 물개가 나무 아래 쏟아져 있기도 해 지네와 개구리가 속삭이는 말을 해독할 독이 필요한데 어떤 숫자를 잘라내야 체크무늬 내일이 올까 눈이 커지는 밤은 사흘이면 충분해 가면을 벗고 따라와 등 뒤에 내가 있어 비 오는 수요일을 찾아야 문제를 풀 수 있지 태양의 자세 끝에서 졸고 있는 얼룩말 고약 같은 꿈 꾸면서 박카스처럼 웃지 오답이 늘수록 경쾌해져 스트라이프 티셔츠처럼 괴담을 걸치고 내년 달력 속 수다스러운 동물원으로 놀러 와 꽃 양산 쓰고 새로 산 블라우스 입고 노랑과 샛노랑과 사바나캣을 만날 때까지만 가끔 세상에 없는 안부를 물으며 찌개가 끓어 저울로 잴 수 없는 내일도 동물에 포함.. 2022. 7. 5.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 - 김만곤 지음 다음 블로그 ‘파란편지’ 선생님 오랜 시간 교육계에 계시면서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을 엮은 책은 편안하기도 따뜻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뭔가 잘못된 것들에 찔려 아프기도 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방법’에서 선생님은 기막히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성공시켜야 할까 하는 무한 책임을 절감한다고, 그런 교육 안에서 우리 모두는 햇살 같은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기를 힘써야 한다고, 나는 과연 아이들을 몇 번이나 그런 생각으로 대해봤을까, 이 나라의 교사들이, 어른들이 사랑으로 가득한 이 책을 읽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어떻게 변할까 상상해본다. 암기하고 또 암기뿐이었던 시절 그래야만 앞에 섰던 그 시절에서 지금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로 얼마나 바뀌고 있나, 다 같이.. 2022. 6. 29.
엄마는 뜨게질 딸은 시에서 사과를 뜨는데 엄마는 주로 꽃을 뜨시네 수세미 장사 같어 텃밭에서 일 하실 때 소형 라디오를 듣는데 집을 짰다고 라디오는 좋겠네 딸기 수세미는 딸기보다 더 먹음직스러워 원피스 수세미는 동영상을 보고 뜬다고 85세에 동영상을 보면서 ㅋㅋ 해바라기 달리아 엄마 얼굴이 보여 엄마가 좋아하는 동백이라네 수선화일거야 해바라기가 익었네 이건 내가 좋아하는 꽃 무슨 꽃일까? 엄마 이건 내 장미야 산뜻한 색상 조합에 재미 붙었어 채송화 같아 이 꽃은 조금 전에 엄마가 톡으로 보내온 [나] [오후 8:32] 장미야? [엄마] [오후 8:33] 응 [나] [오후 8:34] 딱 보니 장미야 꽃술도 있네 [나] [오후 8:34] 이뿌네 엄마, 향기도 나? [엄마] [오후 8:35] 근데 까다로워 [나] [오후 8.. 2022. 3. 10.
이렇게 오는 봄 제시카앵초 앵초는 노랑부터 시작이예요 흰색, 분홍, 빨강은 신호를 기다려요 아기배 꽃일까요 잎 일까요? 산앵두 꽃이 다닥다닥 앵두 수확 할 일군 모집합니다 바위물떼새란 하나 둘 셋 넷 다섯까지만 보여요 아홉마리였는데 날아올까요? 별피기바람꽃 두 송이 보라색 별이 뜬다구요 진주바위솔 죽었다 살아나는 것처럼 0에서 다시 시작하는 아이들 솜다리 여름엔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구름떡쑥이랑 그늘에서 부채질도 필요하죠 새싹이 돋을 때 구름처럼 떠오르는 나를 솜다리, 구름떡쑥만 볼 수 있죠 한라구름떡쑥 이렇게 예쁜 구름 보셨나요 청벚 꽃과 잎이 나란히 며칠 후가 궁금해요 인디언앵초 지난해 두송이였는데 그냥 두 송이로 나오네요 놀았군요 놀았어 그래도 환영이예요 실꽃풀과 애기비비추 살았나요? 살았죠? 살았을거야 지네발란 아.. 2022.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