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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464

파마머리는 빗을 일이 별로 없다 샴푸를 하기전 두피 맛사지 차원에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빗고 거울을 보면 폭소를 터트린다 얼굴의 3배 만큼은 되는 머리칼이 정전기의 응원을 받아서 아, 이 대목에서 사진을 올려야 하는데... 이런 헤어스타일 괜찮네 바꿔볼까? 이러고 나가면 어떨까? 사람들 다 도망가겠지 별별 생각 샴푸할 생각은 안하고 생각이 끝나면 빗으로 빛이나게 두피를 톡톡 탁탁 툭툭 부드럽게 그러다 조금씩 강도를 높여서 빚쟁이에게 빚을 재촉하는 것마냥(해보진 않았지만 그럴 듯하게) 툭딱툭딱 치면 제 정신으로 돌아와 그때부터 샴푸 시작 오래도 사용했다 십년도 훨 넘었으니 큰아들이 집에 왔다가 잘 안보이는 곳에 두었는데 어떻게 봤나 빗이 왜 그래? 어, 오래 써서 그래 아직.. 2022. 10. 5.
식탁은 자꾸 살아난다 나는 아보카도를 생각한다 - 이신율리 『문장웹진』 2022년 8월호 식탁은 자꾸 살아난다 나는 아보카도를 생각한다 - 이신율리 식탁의 무표정한 생각을 썬다 아보카도를 듣는다 아보카도를 먹은 뉴스가 식탁으로 미끄러진다 자글자글한 여름휴가 아보카도 카나페, 초 간단 레시피에 물을 뿌린다 식탁이 살아난다 소문을 듣지 않아도 꽃무늬 식탁보를 깔지 않아도 아버지는 트럭을 몰고 왔다 트럭이 오는 날이면 세상은 꽃처럼 터졌다 식탁이 자꾸 살아난다 식탁에서 가장 튼튼한 곳은 팔꿈치가 닿았던 자리 아버지와 함께 앉았던 자리가 살아난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보카도를 생각한다 트럭의 뒤꿈치를 닮은 아보카도를 심는다 심기만 하면 생각대로 돋아날 것 같아서 아보카도가 살아난다 새싹이 돋아날 때까지 탬버린을 연주했다 뿌리가 자란다 거짓말처럼 이파리가 커다란.. 2022. 8. 17.
그 여름은 어디 갔을까 그 여름은 어디 갔을까 그 여름 능소화는 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바람도 불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동네 끝자락에 사는 할머니 댁으로 심부름을 갔다 “부추 좀 사 와” 나는 소쿠리를 들고 두 걸음씩 뜀뛰듯 날아가듯 능소화 보러 갈 때만 걸었던 걸음이었지 그러니까 능소화 걸음인 거지 기역자로 굽은 할머니의 허리를 보면 그 집 아저씨가 떠올랐어 키 크고 잘생겨 꼭 탤런트 같았던 아저씨와 키 작은 아줌마 아저씨는 퍽 하면 바람이 났고 아줌마는 퍽 하면 울고 다녔던 기억 그래서 할머니 등이 저렇게 굽었나 하는 생각을 하느라 얼마치 주세요 하는 얘기도 잊어버리고 능소화는 부추 밭가에 가죽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세상에 없는 꽃 같았어 어떻게 저런 빛깔로 대롱대롱 매달려 피느냐고 우리 집 마당가엔 가죽나무가 두 그.. 2022. 7. 30.
칸나와 폐차장 - 이신율리『한국문학』2022년 하반기호 칸나와 폐차장 - 이신율리 흩어졌다 모이는 이름에 리본을 단다 가벼워지고 싶은 것끼리 등을 보일 때 그때, 여름보다 느리게 칸나가 핀다 새를 먹은 돌이 유리벽을 뚫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 시들기 시작하는 것들은 기억을 털어 날개를 말리더라 아는 곳에서만 멍 자국을 씻는 저녁 젖은 깃털처럼 무거워지는 쪽으로 칸나가 난다 구름 정도는 휘어잡을 수 있는 곳에서 기다리는 새가 핀다 이름표가 떨어져 낯선 자리마다 셔터를 내린다 안을 수 있는 것들은 가렵다가 간지러워서 선인장에 음표를 달아주거나 비밀번호를 빌려준다 컵라면이 먹고 싶은 코끼리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던 쪽으로 여름이 온다 아무리 걸어도 부르트지 않는 미등이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아 가벼워지는 등을 비춘다 폐차장 가는 길에 붉은 칸나가 핀다 흩어졌다 모이는.. 2022. 7. 28.
그림 편지 - 이신율리 『한국문학』 2022년 하반기호 그림 편지 아이는 열두 컷 편지를 가졌다 그것은 열두 잎을 가진 나무의 이야기 아무도 오지 않는 저녁 잎사귀 끝에서 울면 북쪽이 될까 쌀을 씻으면 늙은 개처럼 차분해질까 편지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붉은 꿩이 날아간 방향이라면 이파리들은 구름 한 채 짓고 아이는 기린이 되고 지붕에 걸린 연을 보느라 편지지 밖으로 발이 빠지고 살구나무가 좋아 저녁으로 사람들이 고인다고 아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 내가 화분마다 물을 준다 고장 난 시계태엽을 돌리고 저녁도 없이 밤을 부른다 어둠이 발등에 차린 밥상, 물컹한 가지 조림을 먹고 찬물을 마시고 찬물은 나를 빤히 올려다 보고 식탁 끝이, 언제부터 절벽이었나 생각할 때 멀리서 달려오는 편지가 내게 팔베개를 한다 그림을 그리면 손바닥 만하게 커지는 그 저녁이 우.. 2022. 7. 20.
엄마의 해바라기 엄마 영양제를 해바라기에 주나봅니다. 씩씩하게도 키웠습니다. "딸, 엄마 해바라기야" 톡으로 해바라기가 왔습니다. 2022.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