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비야, 나야/발표 시36

봄딸기푸딩 말지나, 고추잡채 말뛰나 - 이신율리 봄딸기푸딩 말지나 고추잡채 말뛰나 당근 빛 흙길을 달려요 말지나 방울 소리 나는 웃음은 훈장 씀바귀 눈빛은 무시해요 서로가 다른 곳을 보는 가족사진을 지나 아무거나 잘 자라는 생태공원을 지나 환승은 막 구워낸 모래바람처럼 구파발 파프리카 콩나물 굿모닝 꽃빵 물을 좋아하진 않지만 바다가 보이는 언덕은 좋아해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꽃집은 시들고 타이레놀이 쌓여있는 정류장은 지나쳐요 계란이 돌아오고 청포도가 오는 다시마숲에서 뼈에 좋은 글루코사민 광고 중이에요 세례명 말지나, 칭기즈칸 말뛰나 거미줄 치지 않는 거미를 들여다보는 휴식 같은 보조 열쇠는 없어요 벚꽃 엔딩 컬러링 어서 오세요 몸살에 마침표를 찍으면 봄이 오나요 먹구름과 꽃무늬 원피스를 구별하진 않아요 살아날 것 같지 않은 오늘을 어금니 물고 말달려.. 2023. 1. 11.
모운동* - 이신율리 『문학의 오늘』 2022년 가을호 모운동* ​ 기울어진 곳에 구름을 채운다 붉어지는 쪽으로 벼랑은 자란다 ​ 삭도가 길을 찢을 때마다 하늘에 그림자가 지천이다 머물 수 없는 사람들이 더는 늙을 수 없어 구름을 만드는 모운동募雲洞 별을 캐는 바다를 끌어올리고 감자 꽃은 달빛이 피우는 거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카나리아를 따라 탄광 안으로 들어갔다 새카만 개가 빳빳한 지폐를 물고 섰다 눈에 불을 켜고 극장과 우체국을 부른다 편지를 부치던 얼굴이 벽화 속 으로 들어온다 축제가 시작되고 필름이 느리게 돌아온 다 옥수수 밭 사이로 기차가 온다 양귀비꽃 붉던 자리에 산국 향이 나는 별을 꿀꺽 삼키고 새벽에 기차는 온다 거울 속 너머 잃어버린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 닫힌 갱도에서 겹겹이 구름을 열고 영화를 보고 화전을 굽던 사람들이 걸어 나온다 감자 꽃.. 2023. 1. 5.
파란 편지님 (김만곤 선생님)의 달팽이의 비문증 달팽이의 비문증 이신율리 나비가 바다를 끄는 암초 숲을 지나고 있어 동공에 쌓은 오래된 질문, 왼돌이 달팽이의 등은 바람을 만들지도 몰라 이마를 짚어주는 더듬이 달팽이가 밟으면 가장 얇은 소리가 난다는 길을 비켜가지 길이 생겨나고 있어 물방울 계단을 허물지 않고서도 구름처럼 입 꾹 다물고 맨살을 내어줄 수 있는 이유 주근깨 돋는 한낮은 안개꽃 천지야 동공 속 이야기를 지고 두더지는 파밭을 언제 다 지나가나 눈 뜨고 자는 밤엔 이 밤부터 내일까지 비가 올지도 몰라 크고 둥근 뼈를 그려보거나 처음 들었던 빗방울 소리를 떠올리면 뿔이 쑤욱 자라서 느리게 넘기는 페이지는 왜 그렇게 질문이 많은지 ​ 살만한 이유에 물기 돌면 풋살구 같은 신 벗고 바다를 향해 꿈쩍꿈쩍 나아가지 ​ 물결처럼 팽이를 감고 질문인 것처.. 2022. 12. 3.
달팽이의 비문증 - 이신율리 『문장웹진』 2022년 8월호 달팽이의 비문증 나비가 바다를 끄는 암초 숲을 지나고 있어 동공에 쌓은 오래된 질문, 왼돌이 달팽이의 등은 바람을 만들지도 몰라 이마를 짚어주는 더듬이 달팽이가 밟으면 가장 얇은 소리가 난다는 길을 비켜가지 길이 생겨나고 있어 물방울 계단을 허물지 않고서도 구름처럼 입 꾹 다물고 맨살을 내어줄 수 있는 이유 주근깨 돋는 한낮은 안개꽃 천지야 동공 속 이야기를 지고 두더지는 파밭을 언제 다 지나가나 눈 뜨고 자는 밤엔 이 밤부터 내일까지 비가 올지도 몰라 크고 둥근 뼈를 그려보거나 처음 들었던 빗방울 소리를 떠올리면 뿔이 쑤욱 자라서 느리게 넘기는 페이지는 왜 그렇게 질문이 많은지 살만한 이유에 물기 돌면 풋살구 같은 신 벗고 바다를 향해 꿈쩍꿈쩍 나아가지 물결처럼 팽이를 감고 질문인 것처럼 문을 열고 감.. 2022. 11. 30.
식탁은 자꾸 살아난다 나는 아보카도를 생각한다 - 이신율리 『문장웹진』 2022년 8월호 식탁은 자꾸 살아난다 나는 아보카도를 생각한다 - 이신율리 식탁의 무표정한 생각을 썬다 아보카도를 듣는다 아보카도를 먹은 뉴스가 식탁으로 미끄러진다 자글자글한 여름휴가 아보카도 카나페, 초 간단 레시피에 물을 뿌린다 식탁이 살아난다 소문을 듣지 않아도 꽃무늬 식탁보를 깔지 않아도 아버지는 트럭을 몰고 왔다 트럭이 오는 날이면 세상은 꽃처럼 터졌다 식탁이 자꾸 살아난다 식탁에서 가장 튼튼한 곳은 팔꿈치가 닿았던 자리 아버지와 함께 앉았던 자리가 살아난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보카도를 생각한다 트럭의 뒤꿈치를 닮은 아보카도를 심는다 심기만 하면 생각대로 돋아날 것 같아서 아보카도가 살아난다 새싹이 돋아날 때까지 탬버린을 연주했다 뿌리가 자란다 거짓말처럼 이파리가 커다란.. 2022. 8. 17.
칸나와 폐차장 - 이신율리『한국문학』2022년 하반기호 칸나와 폐차장 - 이신율리 흩어졌다 모이는 이름에 리본을 단다 가벼워지고 싶은 것끼리 등을 보일 때 그때, 여름보다 느리게 칸나가 핀다 새를 먹은 돌이 유리벽을 뚫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 시들기 시작하는 것들은 기억을 털어 날개를 말리더라 아는 곳에서만 멍 자국을 씻는 저녁 젖은 깃털처럼 무거워지는 쪽으로 칸나가 난다 구름 정도는 휘어잡을 수 있는 곳에서 기다리는 새가 핀다 이름표가 떨어져 낯선 자리마다 셔터를 내린다 안을 수 있는 것들은 가렵다가 간지러워서 선인장에 음표를 달아주거나 비밀번호를 빌려준다 컵라면이 먹고 싶은 코끼리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던 쪽으로 여름이 온다 아무리 걸어도 부르트지 않는 미등이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아 가벼워지는 등을 비춘다 폐차장 가는 길에 붉은 칸나가 핀다 흩어졌다 모이는.. 2022.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