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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발표 시36

그림 편지 - 이신율리 『한국문학』 2022년 하반기호 그림 편지 아이는 열두 컷 편지를 가졌다 그것은 열두 잎을 가진 나무의 이야기 아무도 오지 않는 저녁 잎사귀 끝에서 울면 북쪽이 될까 쌀을 씻으면 늙은 개처럼 차분해질까 편지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붉은 꿩이 날아간 방향이라면 이파리들은 구름 한 채 짓고 아이는 기린이 되고 지붕에 걸린 연을 보느라 편지지 밖으로 발이 빠지고 살구나무가 좋아 저녁으로 사람들이 고인다고 아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 내가 화분마다 물을 준다 고장 난 시계태엽을 돌리고 저녁도 없이 밤을 부른다 어둠이 발등에 차린 밥상, 물컹한 가지 조림을 먹고 찬물을 마시고 찬물은 나를 빤히 올려다 보고 식탁 끝이, 언제부터 절벽이었나 생각할 때 멀리서 달려오는 편지가 내게 팔베개를 한다 그림을 그리면 손바닥 만하게 커지는 그 저녁이 우.. 2022. 7. 20.
젊은 시인의 視線, 詩選 - 《열린 시학》 2022년 여름호 고선경 -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신율리 -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채윤희 -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품론 - 일상에 대한 시적 전략 / 황치복 문학 평론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긴 주말, 유행이 지난 소풍, 식탁보의 아름다운 레이스는 누구의 솜씨 - 고선경 내일 인도달력, 화요 파스타, 영광 택시 - 이신율리 고양이로 불리는 일, 나나는 레몬을 좋아해, 아스피린 사용법 - 채윤희 - 고선경, 채윤희, 이신율리의 새로운 시선 - 황치복 1. 일상의 미세한 균열들 - 고선경 2. 일상의 특별한 사건들 - 채윤희 3. 일상에 날아드는 마법 - 이신율리 일상을 이루고 있는 요소 가운데 음식처럼 흔히 호명되는 것이.. 2022. 7. 13.
영광 택시 - 이신율리 《열린 시학》2022년 여름호 영광 택시 - 이신율리 발걸음을 세는 일은 맑거나 흐려지는 날씨 그걸 숫자로 바꾸는 일은 잘라버린 꼬리가 자라는 동안 뒤축이 닳은 미터기를 고친다 행진곡을 따라 떠났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미안해요 난 이제 지도가 없어요 어떤 꼬리들도 그렇다 미터기 속 아이 웃음소리가 살고 새로 난 길이 가라앉거나 떠오르지 않는 살림살이가 좌표도 없이 떠 있다 답은 0이 되거나 밥이 익는다 해나고 바람 불지 않아도 뒤축이 닳는 오늘 반숙 달걀이 첫눈 내리는 표정처럼 명랑할 수 있다면 돼지비계의 마술처럼 사월이 끓거나 씀바귀처럼 알약이 써도 되겠지 더 이상 소화할 것이 없을 때 빈 영수증에 얼굴을 덜어 적는다 빨간 신호에도 멈추지 않는 숫자는 자다가 그린 그림 같아 겹치는 색이 많을수록 정지 버튼을 눌러 공터마.. 2022. 7. 11.
우선 화요 파스타 - 이신율리 《열린 시학》2022년 여름호 우선 화요 파스타 - 이신율리 우린 화요일을 우선합니다 파스타만 먹는 고양이를 빌려오고 녹색 화병에 파르팔레 파스타 일 인분을 꽂는다 나비의 시간으로 30초 동안 나비가 된다 늦게 도착한 휘파람을 찧어 마법의 소금을 만든다 화요일에 맞춘 산사나무 식탁을 위해 높은 솔을 묶는다 악몽을 꾸고 난 다음 날 파스타를 만들어 생일이 태어나고 수국은 분홍으로 변하고 우선 푸른 나비를 고양이에게 먹인다 병아리콩이 뛰어다니는 화요일을 식탁 위 쓸데없이 즐거운 고양이를 앉히고 먹어, 프라이팬의 날씨야 고양이는 파스타와 레몬 어느 것에 가까울까 나는 새콤하게 와 익숙하게를 경멸한다 자라거나 익기를 거부한다 파스타와 나 사이의 화요일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계간 『열린시학』 2022년 .. 2022. 7. 9.
내일, 인도 달력 - 이신율리 《열린 시학》2022년 여름호 내일, 인도 달력 - 이신율리 해를 쪼아 먹는 오늘을 쫓았어 인도니까 나뭇가지 끝에 아이들이 매달려있어 점박이 여우나 붉은 물개가 나무 아래 쏟아져 있기도 해 지네와 개구리가 속삭이는 말을 해독할 독이 필요한데 어떤 숫자를 잘라내야 체크무늬 내일이 올까 눈이 커지는 밤은 사흘이면 충분해 가면을 벗고 따라와 등 뒤에 내가 있어 비 오는 수요일을 찾아야 문제를 풀 수 있지 태양의 자세 끝에서 졸고 있는 얼룩말 고약 같은 꿈 꾸면서 박카스처럼 웃지 오답이 늘수록 경쾌해져 스트라이프 티셔츠처럼 괴담을 걸치고 내년 달력 속 수다스러운 동물원으로 놀러 와 꽃 양산 쓰고 새로 산 블라우스 입고 노랑과 샛노랑과 사바나캣을 만날 때까지만 가끔 세상에 없는 안부를 물으며 찌개가 끓어 저울로 잴 수 없는 내일도 동물에 포함.. 2022. 7. 5.
웹진 시인광장 포엠 리뷰 -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경향신문 당선작)/ 비 오는 날의 스페인(세계일보 당선작) - 백가경,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이신율리, 「비 오는 날의 스페인」,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2021년 6월호(2020, June) 주체적 존재로서의 사물들(4) - 이성적 논리적 상상력과 감성적 체험적 상상력 (이신율리의 「비 오는 날의 스페인」과 백가경의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에 대하여) 김명철 시인 ​ 이 글에서는 2022년 신춘문예 당선시들 중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 확연히 다른 두 편을 선정하여, 두 시편에 나타난 상상력의 성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실제의 현상에 기인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시인광장의 앞선 포엠리뷰들에서 그 근거를 .. 2022.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