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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야/발표 시36

《웹진시인광장 2020년 올해의 좋은시 300선정 작》콜록콜록 사월 - 이신율리 콜록콜록 사월 / 이신율리 ​ 배꽃이 질 때까지 나는, 사월이 하는 일을 보고만 있었다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발이 작은 운동화는 팔지 않았다 참외에서 망고 냄새가 났다 사월이 콜 록거렸다 푸른 것은 더 푸른 것끼리 속아 넘어가고 흰 것은 흰 것끼리 모였다 배꽃 같은 나이를 뒤적거 렸다 달아나지 않으려고 네 칸짜리 사다리를 오르내렸다 하루가 갔다 하늘은 내일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배꽃의 잔소리가 4차선 도로까지 따라왔다 노래하나 물고 새가 날아갔다 잃어버린 가사가 둥 둥 떠다녔다 손을 흔들어도 버스는 지나갔다 초록 티셔츠를 입은 울창한 숲이 아무도 모르게 헛발질을 했 다 떫고 신 것들이 툭툭 나이만큼 떨어졌다 열다섯 살에 잠갔던 배꽃이 먼 쪽에서부터 피기 시작했다 구름 뒤에서 나는 미끄러지지 않는 숲을.. 2020. 6. 21.
키위와 몽키스패너 - 이신율리《문학의 오늘》2019년 겨울호 키위와 몽키스패너 / 이신율리 키위 3호차 C 열 뒷자리 주세요 몽키 컨설팅 여행박람회에요 나중에 입금할게요 산악회를 조여 리무진이 달려요 변기 밸브를 조이고 요실금을 조이고 12인치가 딱 좋아 해골 목걸이를 걸었어요 좌석이 꽉 찼네요 싱싱한 알약 하나씩 삼키고 투명해지기로 해요 멀미를 지울 수 있는 바싹 구운 마이크와 앵무 파노라마 조명, 자정은 멀었어요 설악산 흘림골 스패너 바위예요 구름 따위 흘려보내고 울산바위나 줄 세워볼까요 엉키지 않게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 뒤통수 맞기 전에 가위바위보 채널을 돌려요 오후가 길어져요 부서지기 쉬운 스패너 놀이를 조립하느라 퉁퉁 부은 키위만 남았군요 새콤하게 화질 좋아요 목마른 키위를 꺼내봐요 키위새는 날개 대신 키위를 먹나요 날 수 없는 높이를 삼키고 있어요 밤.. 2020. 3. 1.
취미생활 주스 - 이신율리《문학의 오늘》2019년 겨울호 취미생활 주스 / 이신율리 파인애플 주스를 마시면서 인형 뽑기를 해요 콩순이 왼팔이 걸렸어요 주스를 쏟았어요 주스 속에서 뽀로로가 자라나요 누드예요 포르노로 부르지 마세요 마법인형은 없어요 앵콜을 받은 곰 뒤로 인형이 쌓여요 나를 닮은 여우를 뽑는 시간은 터널을 지나 세 발자국 코발트빛으로 영양소를 계산하는 오만주스를 생각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이어트의 재료는 요요의 취미생활 물컹한 공식이 나를 제치고 세 번째 나를 계산할 때 도로시주스를 마시고 초록을 뱉어내요 오렌지 알갱이는 이쪽에서 반짝거리기 좋아 저쪽으로 옮겨가고 샐러리 손목을 오려내 테이블이 풍성해요 브로콜리 양배추 혼자 남은 날엔 해독주스 맛없는 재료가 바깥에서 바깥으로 넘쳐나요 앵두 버튼을 눌러주세요 원숭이를 언니라고 부르는 아기는 두뇌 .. 2020. 2. 6.
바삭바삭 서커스 - 이신율리《문학의 오늘》2019년 겨울호 바삭바삭 서커스 / 이신율리 코끼리가 귀를 펄럭거려요 귀찮은 파리 때문에 얼른 날아야겠어요 믿지 못한다면 엘레판타 아일랜드로 돌아가세요 몸무게는 별 상관없 어요 코코넛을 깨고 건강하게 번지는 점프 달걀 침낭에서 빠져나와 가볍게 돌아보는 텀블링은 탄력 있어요 멜 론 한 통 먹고 힘내서 천막 높이까지 날아보겠어요 환기통은 멀리 있네 요 바닥이 아찔하게 미는 바람에 노른자에 다리가 빠졌어요 줄넘기 포 즈로 벌써 일어났죠 휘파람 소리 맞춰 기침을 했어요 공짜인가요 아찔할 때 그때 길을 끌어당기는 중이에요 길을 줄여야겠어요 말 안 듣는 원숭이를 제쳐두고 외줄을 탈 차례예요 바삭바삭 서커스 초반부터 반응 괜찮아요 소문을 닫고 수다스러웠던 발바닥이 조용해 지길 기다려요 허수아비처럼 서 있으면 안 돼요 부채를 펼쳐 집.. 2020. 1. 3.
오늘까지만 1900원 - 이신율리《문학의 오늘》2019년 겨울호 오늘까지만 1900원 / 이신율리 오늘까지가 서쪽까지란 말과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상상력입니까 은밀합니까 셀 수 없는 숫자면 어떻습니까 오늘에 동전 파스를 붙였 습니다 습관입니까 커피 우유를 마시겠습니다 이럴 때 부는 바람을 편서풍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부추는 밤에 자랍니다 이곳엔 아무도 자라지 않습니다 아홉 번 밤을 베어내면 봄날이 가는 걸 아십니까 유기농의 불편한 진실과 무농약은 생각이 같습니까 베이킹파우더와 사과 식초는 왜 다른 저녁입니까 일곱 시를 이쪽으로 옮겨 심어도 되겠습니까 딱 세 번 꾼 꿈처럼 붉 어서 말이 없습니다 체기가 가라앉으면 어떤 음식이 생각납니까 토마 토를 올리브유에 볶으면 자장면 냄새가 납니다 숲에서도 자장면 냄새 가 날 때 있습니다 무알콜 칵테일이 콜라보다 낫다는 말입니까 단.. 2019. 12. 21.
제 8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작 - 모르는 과자 주세요 , 이신율리 모르는 과자 주세요 / 이신율리 아는 과자는 어제 다 사라졌어 달콤한 맛을 알기 전에 사라져서 다행이야 사과는 계모가 다 먹어치웠지 내겐 사과 대신 다크초콜릿만 주고 유혹하지 마, 모르는 것은 달콤하지 계모를 동그랗게 묶어 마카롱을 만들었어 빨주노초파남보 다음은 분홍이 되는 이상한 나라에서 서로 모르는 가족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거짓말 두 개 넣고 맛없는 크림이 자랄 때까지 과자는 햇살의 공식을 모른다고 했지 빵, 터지는 멘토스와 다이어트 콜라 폭발하는 계모가 좋아 폴란드초코와플 테니스공껌 턱 빠지는 풋젤리 모르는 과자 주세요 쓴맛도 알고 싶어? 쓴맛이 아는 과자를 안다고 먹고 칡촉 아는 과자가 모르는 과자를 모른다고 먹어치워 악마의 잼 누텔라 계모의 주머니가 깊어지고 있어 아는 과자만큼 손목이 따뜻해져 .. 2019. 12. 11.